일본의 새소식

579호


일본 문화┃추조 원장 칼럼

건배는 한 번!
첨잔하는 일본인

사케소물리에인 추조 원장이 술을 키워드로 일본 문화와 사회를 소개한다.

집필┃추조 카즈오(中條一夫)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일본인에게 ‘건배’는 술에 대한 ‘잘 먹겠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듯 ‘건배’도 첫 잔을 마시기 시작할 때만 한다.

아직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을 무렵, 한국인과 술을 마시러 가면 몇 번이나 건배하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일본인은 보통 처음 한 번만 건배하므로 자꾸 건배하는 한국의 음주 문화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귀중한 수확물과 술은 신에게 먼저 바쳤다. 그다음 그것과 같은 것을 먹고 마시면서 신과의 일체감, 그리고 참가자 모두가 일체감을 느꼈다.

현대에도 일본의 전통적인 결혼식에서는 ‘산산쿠도’라 하여 신랑과 신부가 번갈아 술을 마시는 의식이 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인연이 굳건해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서양식 결혼식에서 반지 교환에 해당한다. 단, 일본에서는 산산쿠도 의식 뒤에 신랑과 신부의 가족도 같은 술을 마심으로써 두 가족이 새로운 친척으로서 인연을 굳건히 한다. 일본인에게 술은 참가자 모두가 일체감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이다.

‘건배’라는 말은 중국어에서 유래했는데 일본에서는 모두가 같은 술을 마시는 의식과 융합했다. 현재 연회 자리에서의 건배는 의식의 종료와 친목의 시작을 선언하는 기능을 한다. 우선 연장자가 인사를 하고 그다음 건배한 뒤 먹고 마시기 시작한다. 연장자의 인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참가자는 건배를 신호로 즐겁게 먹고 마시며 대화를 시작한다. 고대의 비유로 말하자면 건배 이전은 신의 시간, 건배 이후는 인간의 시간이다.

한국인 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보통은 “일본인에게 ‘건배’는 술에 대한 ‘잘 먹겠습니다’이다.”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요리가 나올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듯 ‘건배’도 첫 잔을 마시기 시작할 때만 한다고 말이다.

건배는 한자로 ‘잔을 비운다’라고 쓰는데 앞서 말했듯 일본에서는 참가자 모두가 같은 술을 마심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목적으로 술이 센 사람은 한번에 다 마시지만, 약한 사람은 입만 대는 정도라도 괜찮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건배한 뒤에 다 마실 뿐 아니라, 건배하기 전에도 술잔에 남아 있는 술을 다 마시는 것이 술이 약한 내게는 부담스럽다.

아직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을 무렵, 한국인과 몇 차례 술을 마시러 가서 여러 건배를 하게 되는 것은 이해했다. 새로 건배하기 위해 잔에 술을 채워야 하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마시다 만 잔을 내밀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따르기 전에 다 마시라는 의미 같다. 아니, 건배한 다음에 다 마실 거니까 건배하기 전에는 잔을 비우지 않아도 되잖아요 라고 힘겹게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특히 병맥주를 컵으로 마실 때 가까이 있는 사람의 컵에 든 술이 반 이하가 되면 첨잔해 주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도중에 잔을 채워주면 내가 얼마나 마셨는지 주량을 알 수 없어 별로지만 많은 일본인은 상대방 특히, 손윗사람의 컵이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실례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남은 것을 마시는 게 아니라 항상 가득 찬 잔의 첫 모금을 마셨으면 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따를 때마다 상대에게 다 마시는 것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본의 음주 문화를 모르는 한국인이 일본인과 술을 마시러 가면 건배하는 것도 아닌데 빈번하게 술을 권하는 일본인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술을 권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따라주기 전에 일단 잔을 비우므로 결과적으로 일본인보다 많이 마시게 된다.

이문화 교류의 현장에서는 상대와 자신의 차이점을 재밌게 느끼는 순간과 부담스럽게 느끼는 순간이 있다. 상대에게도 상대만의 논리가 있다는 걸 이해했을 때는 재밌게 느끼는 일이 많다. 음주 문화도 그 예외는 아니다. 내가 좀 더 술이 셌다면 항상 재밌다고 느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