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새소식

577호


일본 문화┃추조 원장 칼럼

고급 니혼슈가
꼭 맛있다고 할 수 없다

사케소물리에인 추조 원장이 술을 키워드로 일본 문화와 사회를 소개한다.


집필: 추조 카즈오(中條一夫)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니혼슈는 쌀을 얼마나 정미하는지가 풍미와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금액에 비례해 맛있어지지는 않는다. 원료비가 저렴하게 해결되어 저렴하니까 품질도 낮은 게 아니라, 오히려 감칠맛 성분은 많다. 이득이다.

일본주(니혼슈)는 쌀을 얼마나 정미하는지가 풍미와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정미하기 전 현미의 무게를 100%라고 하면 우리가 밥으로 먹는 백미는 90% 정도다. 니혼슈를 만들기 위한 쌀은 더욱 정미를 진행한다. 슈퍼마켓 등에서 볼 수 있는 종이 팩에 든 저렴한 니혼슈라도 70% 정도까지 정미한 쌀을 사용한다. 60% 이하로 정미한 쌀로 만든 니혼슈는 ‘긴조슈’, 50% 이하면 ‘다이긴조슈’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불리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조건도 충족시켜야 하지만 이번에는 정미에만 주목해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니혼슈의 라벨에는 ‘정미율’이라는 표시가 있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정 니혼슈는 쌀을 얼마나 정미하는지가 풍미와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금액에 비례해 맛있어지지는 않는다. 원료비가 저렴하게 해결되어 저렴하니까 품질도 낮은 게 아니라, 오히려 감칠맛 성분은 많다. 이득이다. 미한 뒤의 쌀알도 작다. 다이긴조슈에 쓰이는 쌀은 중심부만 사용하므로 단순히 계산해도 원료비가 현미의 2배 이상이 된다. 정미에 드는 연료비와 인건비까지 계산하면 더욱 비싸진다. 원료비가 비싸지면 당연히 니혼슈의 가격도 비싸진다.

그럼 정미하면 왜 풍미가 좋아질까. 우선 맛에 대해 말하자면 쌀의 내부, 특히 중심부에는 전분이 많이 포함되어있는데 이것이 발효해서 알코올이 된다. 쌀에는 단백질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이 발효해 아미노산이라는 맛 성분이 된다. 아미노산은 그 내역에 따라 감칠맛이 되기도 잡맛이 되기도 한다. 쌀 표면 근처는 잡맛이 되기 쉬우며 이것을 정미해서 제거함으로써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니혼슈가 된다. 더욱 정미하면 맛 성분이 적어져 깔끔한 맛의 니혼슈가 된다.

한편, 쌀이 발효해서 니혼슈가 될 때는 멜론이나 바나나 같은 과실향이 생긴다. 쌀 표면 근처의 성분은 다양한 향 성분을 만들어내므로 보통은 과실향이 감춰져 버리는데 잘 정미해서 쌀 중심부만으로 니혼슈를 만들면 이 과실 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향 때문에 니혼슈를 마시지 않았던 젊은 층과 와인을 마시는 외국인 사이에서도 니혼슈 애호가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니혼슈 품평회에 출품하는 제품은 35% 정도까지 정미한 것이 많다. 한양조장은 23%까지 정미한 니혼슈를 일반 판매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며 유명해졌다. 당연히 매우 고가의 제품이다. 이제부터는 기록 경신의 경쟁이다. 10% 이하의 니혼슈가 발표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아니라 정미율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유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기술자의 본능일 것이다. 숫자는 점점 작아져 마침내 1%의 니혼슈가 발표되었다. 드디어 경쟁이 끝나나 싶더니 한 양조장에서 0%(정확히는 0.85%지만 소수점 이하는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의 니혼슈를 발표했다. 일반 판매는 하지 않지만, 만약 한국에서 판매된다면 한 병에 수백만 원이 될 것이다. 나는 7%까지 정미한 니혼슈를 마셔본 적 있다. 그날 밤 식사비보다 니혼슈 한 잔이 더 비쌌는데 공부를 위한 수업료라는 생각으로 지불했다.

그 맛은……좋게 말하면 ‘최고로 깔끔한’ 나쁘게 말하면 ‘맛이 적은’ 술이었다. 잡맛이 전혀 없지만, 감칠맛도 적었다.

니혼슈는 금액에 비례해 맛있어지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정미하면 잡맛이 적어지지만 감칠맛도 사라진다. ‘깔끔한 맛의 니혼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긴조슈나 다이긴조슈를 추천하지만 쌀의 감칠맛을 제대로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덜 정미한 쌀로 만든 니혼슈를 추천한다. 원료비가 저렴하게 해결되어 저렴하니까 품질도 낮은 게 아니라 오히려 감칠맛 성분은 많다. 이득이다.

요즘은 정미 경쟁의 반동으로 ‘귀중한 쌀을 반 이상 정미하는 것은 쌀에 대해 실례다’라고 생각하는 양조장도 있다. 80%, 90%처럼 일부러 조금만 정미한 쌀로 감칠맛을 끌어내는데 도전하는 양조장도 있다.

니혼슈의 다양화는 정미 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니혼슈 라벨을 본다면 정미율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알코올 도수와 헷갈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