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오카 타쓰시(西岡達史) 공사

2018/6/27

문화교류주도형 일한 관계 (제주포럼 일한문화교류세션에서 토론자로서 발표)

2018년 6월 27일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니시오카 타쓰시

 

기조 강연을 하신 두 분 선생님의 발언을 토대로, 제 나름의 개인적인 고찰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일한 관계를 유럽과 비교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유럽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통합은 이른바 경제주도형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그 통합의 이념은 평화에 있었습니다.

경제 면에서의 상호 의존을 심화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상대를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 왔습니다. 상호 의존이 심화되면 상대국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 자신도 타격을 받습니다. 그런 관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말하자면, 안전보장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 번은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기반한 인류 예지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돌아보면 일한 관계는 어땠을까요? 일한 관계는 유럽연합과는 다릅니다. 과정도 상황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일한 관계가 경제주도형이 아니라 문화교류주도형 관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상호 의존보다 상호 이해가 열쇠가 되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는 일한 파트너십 공동 선언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 보면, 정치, 안보, 경제, 문화•인적 교류의 4가지 분야 중에 진전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진전이 확실한 분야는 문화•인적 교류일 것입니다. 한국 내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충분하다고는 못해도, 안정적인 양국 관계의 초석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일한 관계는 문화 교류가 주도할 것으로 기대되며, 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한 관계는 늘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문제가 단숨에 정치 문제화해, 일한 관계의 진전의 기운을 망쳐버립니다. 좋든 싫든 양국 국민이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것이며, 이것이 국가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양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만큼 국민 감정이 국가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두 나라는 달리 예가 없을 것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이런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정된 양국 관계를 위해서는 국민 간의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편견이나 선입견도 무섭지만, 무관심도 무섭습니다. 문화 교류, 인적 교류가 수행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동아시아는 지금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예전의 냉전 구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안전보장의 필요성이라는 대의가 일한 관계를 강하게 지탱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물론, 북한과의 프로세스는 막 시작한 단계로 결코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요?

동아시아가 공존과 번영, 평화와 발전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일한 양국은 아시아의 양대 선진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과거의 경제 성장 과정과 산업 구조 및 사회 구조에도 공통점이 많고, 앞으로 직면할 사회적 과제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 보장, 일하는 방식, 일자리,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방면에서 향후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직면하게 될 과제에 대해 일본과 한국은 이미 대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일한 관계를 전망하자면, 일한 양국이 서로 마주 보고 양국 간 문제를 해결하는 일뿐만 아니라, 일한 양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아시아를 이끌어 가는 관계가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일한 관계가 아시아의 불안정 요소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인해 상대를 보는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상대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는 기회를 당연한 듯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좋습니다. 팝 음악이나 음식도 좋고, 예술이나 전통 예능, 스포츠도 좋습니다. 상대국을 방문해 일상 생활을 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상대국의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를, 생활을, 인생을 이해하고, 상대와 친근해져 그 이해가 더욱 깊어짐으로써 향후 동아시아를 이끌어 갈 관계의 기반을 닦는 일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나아가,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히면 어떨까요? 자유 무역 체제와 기후 변화 체제에 등을 돌리는 움직임, 유럽연합 탈퇴, 강대국의 보호주의 등 글로벌리제이션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내셔널리즘으로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현저해지고 있다는 것은, 오늘 오전 반기문 전UN 사무총장의 강연에서도 지적이 있었습니다.

일한 양국은 모두 글로벌리제이션 덕분에 여기까지 발전해 온 나라입니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어두운 측면을 극복함에 있어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더욱 강한 글로벌리즘으로 극복해 가야 한다고 세계를 향해 주장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환경적 측면을 포함해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를 목표로 UN에서 만든 2030 어젠다 및 SDGs(지속가능 발전목표)가 나타내는 이념을 솔선해 이끌어 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아시아의 양대 국가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 일한 관계의 발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지 일한 양국에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아시아 전체로, 그리고 전 세계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한 관계는 아직 개발 도상에 있으며, 발전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애로(隘路)를 해결할 열쇠는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의 심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