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오카 타쓰시(西岡達史) 공사

2018/5/31

자연을 표현하는 일 (이케바나 '오하라류' 시연)

2018년 5월 31일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니시오카 타쓰시


 

 

 

이케바나, 즉 꽃꽂이 ‘오하라류’의 치지 마사카즈(知地 正和) 선생님께서 우리 문화원을 찾아 주셨다.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갤러리에서 열린 작품 전시회의 오프닝 행사에서 이케바나 시연을 해 주셨다.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 관객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다섯 가지나 되는 작품에 해설을 곁들여 가며 멋진 솜씨로 완성해 갔다. 해설은 초보자라도 매우 이해하기가 쉬웠고, 이를 다른 선생님이 한국어와 영어로 통역하면서 진행했다. 완성된 작품도 예술이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시연이야 말로 기(技)이자 예술이기도 하다,

시연 작품 중에는 ‘사경성화자연본위(写景盛花自然本位)’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화병이 아닌 넓은 수반에 꽃을 수북하게 꽂는 것이 ‘오하라류’의 특징이다. 그런데, 수면(水面), 즉 넓은 수반의 전체 면을 사용해 꽃을 꽂지 않는다. 수면 왼쪽의 절반 정도가 비어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수면의 비어있는 공간은 꽃을 꽂고 남은 부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냇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냇물이 큰 강이 되어 넓은 바다로 이어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언뜻 보면 사용되지 않아 없어도 될 것 같아 보이는 수면에 그런 의미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꽃이 꽂혀 있는 오른쪽 절반은 산이라고 했다. 정말로, 산길을 걷거나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다 문득 돌아보면 바로 옆에 피어 있을 법한 화초들이 거기에 있다. 여름에 단풍이 드는 ‘황로(黃櫨)’의 잎사귀도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이에 보라색 꽃 한 송이가 주위를 둘러보듯 우뚝 서 있다. 치지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꽃들이 꽂혀 있는 쪽은 산이므로 실제로 수반 위에는 흙이 없더라도, 마치 흙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게 좋다고 하셨다.

 

나는 등산을 좋아해서 자주 산에 오른다. 등산을 하다 산에서 야생화를 만나면 사진을 찍는다. 그렇다고 그 사진이 꽃 사진은 아니다. 배경에 먼 산들과 거기에 강까지 들어가 있으면 초보자에게도 나름 매력적인 구도의 사진이 된다. 그런 세계를 하나의 수반 위에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대자연을, 이 작은 수반 위에서 카메라도 쓰지 않고 표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자연에는 이치가 있다. 그곳에 그런 산이 있고, 강이 있기에 그곳에 그런 꽃이 피어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케바나 ‘오하라류’이지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꽃꽂이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별로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산길을 걷다 보면 지질과 지형, 기상 조건도 일본과 비슷한 것 같다. 식생과 화초가 일본과 많이 닮았고, 일본어 이름을 가진 꽃도 많이 피어 있다. 그리고 서울에도 대형 화훼시장이 있어, 다양한 종류의 꽃꽂이 재료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꽃이 있기 때문에, 꽃을 보는 관점도 꽃을 즐기는 방법도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꽃을 통한 세계관이나 자연관에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치지 선생님은 시연 중에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1)에 대해 설명하셨다. 물론, 자연관뿐만 아니라 종교관이나 인생관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였겠지만, 한국 분들에게 이 ‘모노노아와레’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여겨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 일본인들이, 외국인이라서 모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기 쉬운 것들도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케바나가 한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1) 일본인의 미의식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자연, 인생, 예술 등으로 인해 촉발되는 애절한 정취와 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