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보며
주대한민국일본국특명전권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나는 도자기에 다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흙 반죽을 해온 것은 아니며, 또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온 것도 아니다. 각양각색의 도자기를 보는 것은 매우 즐겁다.
도자기에 있어 한국은 흥미진진한 곳이다. 이천, 문경 등지의 여러 가마를 구경했다. 조선의 도자기는 규슈(九州) 등의 일본 도자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가을, 서울시내에서 다나카 사지로 작도전(田中佐次郎作陶展)이 있었다. 선생은 가라쓰(唐津)의 도예가로 부산 근교의 울산시 언양에 ‘구산요(龜山窯)’를 세우고 한국의
흙을 써서 고려 찻그릇(高麗茶碗) 등의 제작에 몰두하고 계신다. 다나카 선생이 한국 독지가의 지원을 받으며 도자기 제작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다.
400년이 넘는 양국간의 왕래와 앞으로의 일한관계 증진을 향한 선생의 열정을 듣고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내가 맨 처음 점토를 만진 것은 70년대 초 미국 프린스턴에서 작은 설탕그릇을 만든 때다. 뚜껑이 달린 네모난 합(盒)이다. 미국에서는 마시코(益子)의 이름이 유명했다.
도예가 하마다 쇼지(浜田庄司 : 1894~1978)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 1887~1979) 등의 이름도 미국에서 처음 들었던 것 같다.
그 후 일본에 돌아와 미국에서 처음 얘기를 들었던 ‘마시코’에 갔다. (이곳의 도자기는)무게감이 있고, 삶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 대선배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정말로 움막처럼 비좁은 공무원 숙소의 단칸방이었지만, 작은 식탁 위에 차려진 식기들은 훌륭했다.
모두 마시코의 도자기 마시코야키(益子焼)였다. 음식이 담긴 마시코 접시와 다완(茶碗)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박혀 있다.
1982년 여름, 영국 근무를 하게 되었다. 영국은 버나드 리치의 모국이다. 세인트 아이버스(St. Ives)를 목표로 콘월(Cornwall) 지방을 여행했다.
버나드 리치와 하마다 쇼지는 이곳에서 도자기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1920년대다. 세인트 아이버스는 콘월 반도의 거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이다.
규슈에는 많은 가마골이 있다. 오랜 세월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오이타켄(大分県) 히타(日田)의 산속에 있는 온타(小鹿田)이다.
히타에서 좁은 시골 산길을 따라 버스로 1시간 남짓 산을 오른다. 그 종점이 온타 마을이다. 버스를 내리면, 점토를 바수는 물로 움직이는 디딜방아 소리가 들린다.
가라쓰에도 갔다. 성곽도시 죠카마치(城下町)다운 중후한 도자기다. 거기서 이마리(伊万里)로 발길을 옮겼다. 에도시대(江戸時代:1603~1868), 이마리의 도자기는
이마리항에서 인도양, 케이프타운(지금도 케이프타운에는 이마리 도자기가 남아 있다)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문화를 풍요롭게 했다.
어느 해 겨울, 워싱턴에서 애리조나에 갔다. 그곳에서는 인디언이 독특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푸에블로 인디언 등의 도자기로 훌륭하다.
샌 일데폰소 푸에블로(San Ildefonso Pueblo)의 자그만 토기를 샀다.
남아프리카에서 그만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도양에 면한 더반 교외의 산속에 큰 스튜디오를 짓고 도자기 제작 활동을 하고 있는 이가
앤드류 월포드(Andrew Walford) 씨로 마시코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커다란 독이나 타일 패널 등도 손수 만든다. 산 중턱에 세운 살림집 겸 스튜디오는 매우 잘 지었으며,
작품은 마시코를 연상케 하는 훌륭한 것이었다. 작품이 완성되면 트럭에 실어 요하네스버그로 내다판다. 대저택을 갤러리로 꾸며 진열하고 즉석 판매하는 것이다.
실내와 풀 등 정원에 놓인 작품은 하나같이 운치가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사람과 흙, 그리고 마시코의 합작품이다.
얼마 전 그의 웹사이트를 보았더니 더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남아프리카에는 즐루(Zulu)라는 부족이 만드는 항아리가 있다. 둥근 형태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소박한 맛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맥주를 담그는 데 쓰는 것이다.
큰 것은 한 아름 정도의 크기도 있는데, 오름가마처럼 고온에서 소성하는 것이 아니라 흙에 구멍을 파고 불을 피워 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온에서 구워낸 그릇이라 좀 여리다. 구워내면 전체적으로 돼지기름을 바르며, 즐루 지방에서는 시골의 길가에서 팔고 있다.
나는 실제 살림에 쓸 큰 것을 사고 싶었으나, 운반이 염려되어 결국 손바닥만한 작은 것을 샀다. 그 즐루 포트는 지금도 응접실 장식대에 떡 자리잡고 있다.
도자기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면 어디나. 어떤 나라이든 훌륭한 도자기가 있다.
아시아에는 아시아의 도자기가 있고, 미국이나 유럽에는 또 그 나름의 도자기가 있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도자기가 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땅의 도자기는 이문화(異文化)에 접하며 더욱 발전해간다. 얼마나 세계적이며, 멋진 세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