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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가차시(カチャ一シ一)


주한일본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춤과 가차시


지난해 9월 중순 서울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추석을 맞았다. 추석이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임은 평소의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거리가 조용해진 것만으로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인사동은 사람의 물결이 넘쳤으나,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구둣발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고즈넉했다.

나는 동쪽으로 발길을 옮겨 가까운 운현궁으로 향했다.


이곳은 19세기 조선시대 고종(高宗)의 생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사저로 당대엔 여러 모로 정치의 중심지였는데, 예전에는 훨씬 더 규모가 컸다고 한다.

북쪽에 있던 구름재(雲峴)란 고개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자주 안개가 끼고 구름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이렇게 불렸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뜰 안은 가을 정취가 물씬한 멋진 분위기였다. 내가 한국의 고건축에서도 좋아하는 것은 그 차분한 벽(壁)이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도 차분해진다. 가운데뜰에서 뭔가 시작한 기척이 나기에 가 봤더니, 가설무대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상모(象毛)를 빙글빙글 돌리고 빠른 속도로 장구를 치면서 온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음악이 한창 고조될 무렵이다. 앞쪽에 있던 노인이 슬며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가락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더니 흔드는 것이었다. 사뭇 한가롭고도 흥겨운 듯이…….


한참 그 모습에 취해 있던 나는 문득 오키나와의 '가차시(カチャ一シ一)'를 떠올렸다.


'가차시'는 오키나와에서 결혼식 같은 때, 그보다 경사로운 일의 말미에는 반드시 추는 류큐(琉球:오키나와의 옛 이름)의 춤이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샤미센(三味線)의 효시인 산신(三線)의 선율에 몸을 실어 춘다. '가차시'란 '휘휘젓다'는 뜻의 류큐 말로 모두 다함께 어우러져 추는데,

오키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능숙한 춤 솜씨가 볼거리다. 참 격조있는 춤사위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히 남자답게 로봇처럼 추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에 멋지고 틀이 잡혀 있다. 산신의 가락이 빨라지면 그에 따라 빨리 추는 사람도 있고, 이에는 아랑곳없이 여전한 속도로 천천히 추는 사람도 있다.

그러는 사이 손 피리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도 끼어든다. 나도 오키나와에 있을 때는 몇 차례 우연히 춤추는 자리에 함께했었다.

처음엔 무척 쑥스럽더니 어느 결에 즐거운 기분이 되는 거였다. 두 손으로 미닫이를 여는 느낌으로 손을 움직이는 것이 요령이라 배웠다. 오키나와의 삶의 춤이다.


언젠가 라오스의 부수상 겸 외상이 나하시(那覇市)를 방문했다.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영화 [The Teahouse Of The August Moon]의 로케 장소였던

'마쓰노시타(松の下)'에서 류큐 요리로 오찬을 나눈 자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가차시를 추게 되었다.

일단 시중을 들던 여종업원에게 간단한 지도를 받고 외상과 그 일행도 일어나 추기 시작하더니 금세 산신의 선율을 타며 능숙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다들 흥에 겨워 떠들썩했다.


나중에 한국 분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운현궁에서 본 춤은 어깨춤과 절굿대춤이 아니었나 싶다.

마을 축제나 집안 경사에, 명절날 민속놀이 등 즐거울 때면 해금과 피리, 장구 등의 가락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대중적인 춤이라고 한다.

어깨춤은 주로 여성이, 무릎을 아래위로 굽혔다 폈다 하면서 추는 절굿대춤은 주로 노인들이,

또 여자 노인들은 손을 흔들면서 추는 경우가 많으며, 춤출 때는 '얼쑤!''얼씨구,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고.


오키나와는 15세기부터 500년간 류큐 왕국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 지역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했던 곳이다.

실제로 오키나와의 가차시와 한국의 춤이 역사상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의 여부는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렇듯 비슷한 춤이 일본과 한국에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그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어차피 인간의 기본 감성은 어디에 살든지 또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꽤 공통적인 듯하다.

(2008년 4월 1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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