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자취를 찾아서 (히로시마현 시모카마가리지마)
주한일본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나는 히로시마현 출신이다. 한국 근무가 결정되자, 지인으로부터 부임하기 전에 꼭 왔다가라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히로시마현 구레시의 동쪽에 있는
시모카마가리지마(下蒲刈島)는 일찍이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왕래할 때 늘 머물렀던 곳. 지금은 귤 산지로 유명한 사방 16㎞의 자그만 섬이다.
지난해 7월, 섬에 다녀왔다. 요즘은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로 갈 수 있다.
아키나다 대교(安芸灘大橋)를 건너 몇 분만 달리면 섬의 중심지인 산노세가 나온다. 상점가를 지나면, 왼쪽으로 훌륭한 돌 계단식 선착장인 나가간기(長雁木)와
밤을 밝히는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선착장 저 건너에는 산노세의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가미카마가리지마(上蒲刈島)가 있다.
또 선착장 바로 앞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 다이묘(大名)들의 전용 숙소였던 고혼진(御本陣)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비록 그 자리에 산노세 예술문화관이 들어섰지만,
통신사 일행의 안내역을 맡았던 쓰시마번의 숙소로 쓰이던 곳이다. 그 옆으로는 돌을 깐 오래된 고샅길이 민가 사이를 누비며 비탈진 산을 오른다.
옛날에는 골목을 올라가면 사절단의 고급 숙소였던 '가미노차야(上の茶屋)' 등이 있었다고 하나 아쉽게도 지금은 자취도 없다. 낡은 돌길만이, 선착장에서 대대적인 환영식을
마친 통신사 일행이 열을 지어 엄숙히 융단 위를 걸어 올라갔을 광경을 연상케 할 뿐이다.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니, 먼 에도시대부터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 돌계단이 철썩이는
바닷물에 씻기고 있다.
당시 산노세는 세토 내해에서도 밀물 때를 기다리는 항구로 번창했는데, 류큐(琉球)의 사절 등도 이곳을 경유해 에도로 향했다. 한편, 통신사는 시모노세키에서 파도가 잔잔한
세토 내해로 들어서 산노세에서 2박한 뒤 도모노우라로 향했다. 통신사 일행은 12차례 중 11번을 오고가는 길에 산노세에서 묵었다.
히로시마번(廣島藩)은 통신사 일행(정.부사(正.副使) 외 유학, 음악, 의사 등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포함한 500명 이상의 대사절단)을 환대하기 위해 이들의 기호를
조사하는 등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또 통신사 접대 경험이 있는 가미노세키(야마구치현)에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행의 짐을 운반하기 위해 거룻배 135척을
가이타(海田), 니가타(仁方) 등의 인근 마을에서 조달했다. 물 확보도 큰 문제였는데, 산노세의 우물만으로는 모자라 히로시마와 미하라(三原) 성에서 우물물을 날라 오기
위해 수선(水船) 100척을 준비했다고 한다.
히로시마번은 진수성찬으로 이들을 접대했다. 통신사 일행의 기록에도 '아키카마가리(安芸蒲刈)의 음식이 최고'라고 했을 정도다. 그 때의 호화로운 상차림을 재현한 것이
쇼토엔(松濤園)의 박물관('고치소이치반칸(御馳走一番館)')에 진열되어 있다.
다른 나라 대표단을 맞이하는 것이 이 고장 사람들에게 굉장한 행사였음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접대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榜)이 나붙기도 했다.
사절단의 배가 어느 곳에 정박하든 방해하지 말 것, 무례한 행동을 하지 말 것, 숙소 등에서는 불을 조심할 것, 일본의 풍속이나 관습을 몰라도 이를 탓하지 말 것,
일체 흥정을 하지 말 것, 발이나 천막, 병풍 등은 아무리 좋은 것을 사용해도 상관하지 말 것 등이다. 쇼토엔에는 그 같은 복제 팻말이 세워져 있다.
통신사 시대를 떠올릴 때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인 경위는 차치하고, 양국관계에 있어 조선통신사 시대는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려 한 좋은 시절의 좋은 교류였다.
작년은 조선통신사 파견 400돌의 해로 10월에 '한일축제 한마당 2007 in Seoul'을 성공리에 개최했는데, 그 가운데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이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나라나
지역마다 멋진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 어떤 문화, 어떤 전통도 다른 면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갖가지 교류를 통해 놀랄 만큼 비슷하거나 더 발전
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다른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서로 알고, 맛보는 그런 자세가 더욱더 중요하다고 본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한결 풍요롭게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가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쳐 이제 다시 긴밀한 교류를 통해 거대하고 다이내믹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큰 물줄기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대(大)시대의 도래를 느낀다. 다른 세계 지역과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가 번영하는 지역 공동체를 향해 역동적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주 :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소견일 뿐 대사관의 견해가 아님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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