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있고 계곡 있고……또 산이 있어

3월에는‘3. 1절’이 일한관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 달에는 산(山)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봄이 오면 가까운 산들도 싱그러움을 더하며 사람을 손짓한다.
서울에 부임 후, 주말마다 달리 할 일이 없을 때는 가까운 산을 찾은 적이 많다. 지금까지는 북한산을 몇 차례 코스를 바꿔 가며 올랐다. 도봉산에도 한 번 가봤다. 이 두 산은 한겨울에도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인기 코스다.
그 옛날 대학 시절, 등산 동아리에 한때 몸담아 몇 군데인가 일본의 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그 후로도 가끔 산을 오르곤 했다. 도쿄에서는 주말이면 단자와(丹尺)나 오쿠치치부(興秩父)의 산을 찾기도 했다.
전임지인 제네바에서는 근교의 산, 아니 야트막한 동산 같은 곳을 걸었다. 또 비록 탈것을 이용해서긴 하지만 등산 철도로 융프라우 정상까지 오르거나, 마터호른봉 혹은 몽블랑의 위용을 눈앞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스위스의 알프스산, 일본의 산, 그리고 한국의 산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같은 산이되 서로 사뭇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기 나이가 바뀌듯, 요컨대 나이를 먹음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또 경험도 달라진다. 한 마디로 등산, 또는 산행이라 해도 가지각색이다. 다른 산에서 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산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의 일이다. 동아리의 여름 합숙활동으로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시베쓰다케(芦別岳)에 10여명이 함께 오르던 도중이었는데, 정상에 닿기도 전에 곰을 만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지금도 어제 일인 양 기억이 또렷하다. 하긴 곰은 선두에 선 사람이 얼핏 봤는지 말았는지 정도였고, 나는 그 후 일행 중 한 사람이 카메라에 담은 모습을 봤을 뿐이다. 덩치 큰 갈색 곰‘히구마’였다.
한국도 산에 곰이 서식하는 곳이 많은지 모르겠다. 또 한국 곰은 ‘히구마’ 계통일까, 반달곰인 ‘쓰키노와구마(月の輪熊)’ 계통일까. 한국어로는 ‘곰’이고, 일본어로는‘구마’라 하니 발음도 비슷하지 않은가.
요즘 새삼스럽게 아시베쓰다케의 곰 생각이 난 까닭이 있다.
새 항공 노선으로 오는 여름부터 서울-아사히카와(旭川) 간 직항기가 취항한다는 소식을 듣자, 오래 전 아시베쓰다케에 오르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기차로 도쿄에서 삿포로(札幌)로, 다시 아사히카와(旭川)와 후라노(富良野)를 거쳐서야 겨우 목표하던 산에 다다랐던 기억을…….
현재 이미 한국의 3개 도시와 일본의 24개 도시가 북으로는 삿포로(札幌)에서 남으로는 오키나와까지 공로(空路)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다 여름에는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 하코다테(函館)가 추가된다고 한다.
마침 3월 1일부터는 일한 간에 비자 없이도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치와 아울러 생각해보면, 서로 상대국을 여행하는 것이 이미 해외여행이니 외국여행이니 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국내여행이나 거의 진배없다고 할까.
‘한국 100대(大) 명산’이란 책을 샀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과연 얼마나 오를 수 있을는지. 북한산, 도봉산이 100대 명산 중에 각기 꼽히고 있으니 이미 두 곳은 오른 셈이다. 정상까지 정복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정월 초하루에는 계룡산 주위에 있는 신원사(新元寺)와 갑사, 동학사의 절 순례를 했는데, 이 산도 명산 중의 하나다. 제주도의 한라산도 그렇지만,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면서 들은 바에 의하면 정상까지는 왕복 9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한 번은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시간 여유를 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100대 명산’을 알아봤더니, 지금껏 숱한 세월 동안 오른 산이 불과 열 곳도 안 된다. 도쿄 주변의 보통 산은 명산 축에 들지도 못한다. 일본의 산은 지형 탓에 내륙 깊숙이 자리한 큰 산이 많다. 명산으로 꼽히는 많은 산들은 당일로는 오를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의 등산 애호가 여러분께서도 일본의 100대 명산을 올라가 보시기 바란다. 또 앞으로는 공동으로 ‘일한 100대 명산’ 리스트를 작성해봄도 좋지 않을까.
‘아사히카와에서 아시베쓰다케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예를 든 것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직항편이 운항하는 26개 도시 가까이에 있는 명산을 조사해 일본으로 등산을 가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는가. 권유해 보고 싶다.
물론 일본 등산 애호가들에게도 한국의 산을 알리고 싶다.
아무튼 최근에 산 ‘한국 100대 명산’ 리스트에 따르면, 100번째로 백두산이 올라 있다. 남북통일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어 의미심장하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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