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주대한민국일본국대사관 경제부 공사
오이케 아쓰유키(尾池厚之)
1월 26일 토요일. 뒤늦게나마 기름유출사고가 난 태안의 기름제거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작년 12월의 사고발생 직후, 일본정부는 방제물자 제공이나 전문가팀 파견 등
지원에 많은 힘을 쏟았지만, 나 자신은 한국 분들과 더불어 현장에서 땀 흘리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특히 주변의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더 더욱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건 나만이 아니었던 지, 주한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여러분들이 태안군청과 연락을 취하며 주말을 이용한 자원봉사활동을 기획해
주었다.
당일은 나를 포함해 일본인 직원 8명, 한국인 직원과 그 가족 28명 등 총36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서울을 출발하여 대형버스를 이용해 태안으로 향했다.
태안에 도착해 한국인 직원 2명과 나는 대사관 자원봉사자를 대표하여군청으로 인사를 가서 진태구 군수에게 대사관에서 모금한 성금을 전달했다. 바쁜 와중에도
우리를 환영해 주신 군수로부터 ① 태안반도의 약500㎞에 이르는 해안선 가운데 165㎞가 아직도 오염되어 있으며, 어업이나 관광산업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② 전국에서 오신 많은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벌써 1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우리 일행은 태안반도의 북단 근처인 태안군 원북면 황촌리로 이동하여 기름제거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해안가에는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우리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총 5시간 남짓 바위에 달라붙은 기름을 닦아내는 일을 했다. 이미 대부분의 바위는 자원봉사자들이 한 번은 닦아냈는지, 제거된 기름의
양이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날처럼 일기가 좋으면 바위에 스며들어 굳어있던 기름이 녹아 나오므로 아직도 작업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느꼈다. 바위의
패인부분이나 작은 틈새에 달라붙은 기름을 제거하는데는 헝겊뿐 아니라 칫솔이나 얇은 옷감을 씌운 나무젓가락, 면봉 등이 의외로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2차 오염을 피하기 위해 작업에 쓰였던 쓰레기들은 절대로 현장에 남기지 않고 지정된 장소에 버리도록 세심한 주위를 기울였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막막하고 힘든 작업이었는데, 이 와중에 1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났던 기름유출사고가 생각났다. 1997년 1월 러시아의 나호토카호가 일본 근해에서
대규모 기름유출사고를 일으켜 6,000kl의 기름이 흘러나왔다.이 때 일본에서는 30여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힘을 모았으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후쿠이켄의 미쿠니초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밀려들어 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바다를 살려냈다.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일궈낸 성과는 '30만 명의 기적', '미쿠니의 기적'으로 일본인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 태안사고에는 이를 웃도는 1만 kl의 기름이 유출되어 그 피해가 더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2개월여 만에 이미 일본의 4배에 이르는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태안이 자랑하는 관광 명소이자 최대의 피해 현장 중 한 곳인 만리포는 자원봉사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절묘한 연계로 불과 1주일 만에 대강의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3개월이 걸린 작업을 1주 만에 끝낸 것이다.
사고 9일째 현장을 찾은 일본의 긴급지원대 전문가팀이 한국의 저력을 직접 보고는 '태안의 기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사고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모든 이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한 '기적'을 일으킨 한국 분들께도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집합장소로 가던 택시 안에서 한 일본인 직원이 경험했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열심히 공부 중인 한국어로 "오늘 태안에 가서 기름제거 활동에 참여합니다"라고 하자, 운전기사분이 아주 감격해 하며 "함께 가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택시 요금을 깎아주었다고 한다. 작은 일 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인의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음 훈훈해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