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 드라마 어워즈 노미네이트 작품
‘쿠라라(眩)~호쿠사이의 딸~’(NHK) 상영회
2018년 7월 5일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니시오카 타쓰시
※ 이 글은 2018년 7월 5일(목)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서울 국제 드라마 어워즈 노미네이트 작품 ‘쿠라라(眩)~호쿠사이의 딸~’(NHK) 상영회>에서 상영 전 진행되었던 설명의 전문입니다.
오늘은 한국 분들과 함께 일본의 최신 명작 드라마를 감상하는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은 ‘쿠라라(眩)~호쿠사이의 딸~’이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감상하시기 전에 짧은 시간이나마 저의 사견을 덧붙여 드라마의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쿠라라’는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NHK가 제작한 단편 시대극 TV 드라마입니다. 일본에서는 2017년 9월에 방영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시대극이라 하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가리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에도(江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입니다. 전국 시대의 무사, 즉 센고쿠(戦国) 무장들이 활약하는 전국 시대의 이야기도 인기가 있지만 역시 평화로운 에도 시대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당시의 서민 생활을 그린 소재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도라 함은 지금의 도쿄를 일컫는 말입니다.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도쿄를 에도라 불렀습니다. 당시에도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제일의 대도시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서민생활의 희로애락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우키요에(浮世絵)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에도 시대는 17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약 250여 년간 이어진 전쟁이 없었던 태평한 시대였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 문화가 꽃을 피운 시기는 전란의 시대가 아니라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회화 분야에서는 에도 시대에 우키요에가 발전했습니다.
우키요에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풍경을 선명한 색조로 표현한 회화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지며 대중 문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드라마에는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우키요에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가 등장합니다. 이 호쿠사이의 딸이자 제자이기도 한 오에(お栄)가 주인공입니다. 아버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후가쿠(富嶽) 36경’입니다. 후가쿠는 후지산을 일컫는 말입니다. 36장의 그림이 세트를 이루는 이 작품은, 일본 각지에서 후지산이보이는 지역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에도 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후지산은 등반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새까만 화산재 위를 계속해서 올라 가야하고, 늘 강한 바람이 불어 온 몸이 새까만 모래로 뒤덮이게 됩니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산입니다. 표고 3776m로 시즈오카현(静岡県)과 야마나시현(山梨県)에 걸쳐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다
산맥으로 이어지지 않은 하나의 봉우리이기 때문에 일본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중22곳의 지역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과 봄에는 눈에 덮여 하얗고, 여름과 가을에는 검게 보이는지라 그림으로 계절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도쿄 도내의 고층 건물에서도 후지산을 볼 수가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대기오염 때문에 도쿄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공기가 깨끗해져, 맑은 겨울 날에는 새하얀 후지산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 에도 시대에도 잘 보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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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를 표현한 ‘가나가와오키나미우라(神奈川沖浪裏)’는 후가쿠 36경 중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후지산은 작게, 가장 앞 쪽에 있는 파도는 크게 표현된 원근법 구도입니다. ‘정(静)’인 후지산과 ‘동(動)’인 파도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
神奈川沖浪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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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부근 후지미가하라에서 본 후지산을 그린 ‘비슈후지미가하라(尾州不二見原)’는 보통 ‘통(桶) 장수의 후지’라 일컬어집니다. 이 거대한 통에 대해서는 일본주, 즉 사케를 주조할 때 사용되는 술통이라는 설도 있고, 욕조 통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
尾州不二見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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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 부는 쾌청한 후지산의 모습을 그린 ‘가이후카이세(凱風快晴)’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보통 ‘붉은 후지’라고 불립니다. 눈이 남아 있는 모양과 비늘 구름에서 여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바라본 후지산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
凱風快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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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마야가시에서 본 료고쿠바시 다리의 석양을 그린 ‘온마야가시요리 료고쿠바시세키요오미루(御厩川岸より両国橋夕陽見)’는 에도, 즉 도쿄의 풍경입니다. 이 료고쿠바시라는 다리는 현재 자동차 도로로 변했지만 아직까지 남아있으며, 에도 시대 무렵부터 스미다가와(隅田川)강에는 이처럼 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구도로는 한강처럼 큰 강으로 보입니다만, 실제로 스미다가와 강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폭이 200m쯤 되는지라, 목조 다리를 세우는 일은 대역사였을 것입니다. 이 다리의 풍경은 드라마에도 등장합니다. 또, 현재 이 부근에는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이 건립되어 호쿠사이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御厩川岸より両国橋夕陽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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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우키요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초판을 기초로 하여 우키요에 장인이 제작한 복각화(復刻畵) :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소장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호쿠사이가 아니라 그의 딸이자 제자인 오에입니다. 아버지인 호쿠사이와 마찬가지로 우키요에에 일생을 바친 여성입니다. 주인공인 오에가 그린 인상적인 작품이 몇 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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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原格子先図 |
夜桜美人図 |
그 중 하나가 바로 요시와라의 밤 풍경,
격자 너머의 모습을 그린 ‘요시와라코시사키노즈(吉原格子先図)’입니다.
요시와라(吉原)는 당시 에도의 유곽, 즉 게이샤나 유녀(遊女)들이 있었던 번화가입니다.
격자 너머의 유녀들을 보면, 등을 지고 있는 여성은 그림자 때문에 보이지 않고,
앞 쪽을 향해있는 여성도 격자에 가려 얼굴이 전부 보이지는 않습니다. |
또 한 작품은 벚꽃 핀
밤 풍경 속의 여성을 그린
‘요자쿠라비진즈(夜桜美人図)’,
이 또한 유명한 작품입니다.
석등의 빛에 의지하여
시를 읽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
이 두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아버지 호쿠사이의 대표작인 후가쿠 36경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오에는 빛과 그림자의 화가라고 일컬어지며, 에도의 렘브란트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일본은 쇄국을 하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오에의 작품에서는 이 무렵 일본에 유입된 서양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우키요에는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선으로 나뉘어진 안쪽을 색으로 칠하는 ‘선’의 화법입니다. 소위 말하는 색칠 공부와도 같은 방식입니다만, 우키요에의 대부분이 목판화였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색을 입히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 본 오에의 두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선’으로 윤곽을 그리지 않고 색의 농담으로 빛과 그림자를 표현해 가는 것은 본래 서양화의 유화를 그리는 방식이지만, 오에의 작품에서는 이렇게 ‘면’으로 그리는 화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럼 드라마의 이야기도 돌아가 보겠습니다. ‘쿠라라’는 일본을 잘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 배경이 에도 시대인지라 마을의 모습과 풍경에서도 일본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 뿐만이 아닙니다. 스토리에서도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조용하고 잔잔하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면서도 세세한 부분에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이 들어 있어 인상적인 장면이 반드시 한 곳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오에가 앉는 방식입니다. 무릎을 세우거나 양반다리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 분들께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 일본 여성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행동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주인공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버렸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소소한 즐거움이 있으니 기대를 가지고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여러분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