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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끝자락,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잇달아 세상을 떴다. 내 청춘에 다채로운 빛깔을 더해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간 이 칼럼에서 영화에 대해 자주 언급해왔기에 아셨으리라 본다.
한국영화는 부임 전부터 봐왔지만, 이곳에 온 후론 무던히도 봤다. 다만 일본어 자막이 없으면 이해를 못하는 탓에 좀 오래 된 비디오나 DVD를 포함해서 수십 편쯤 됨 직하다. 또 많진 않지만 TV 드라마도 몇 편인가 봤다. 드라마는 전편을 다 보려면 시간이 걸리는 점과, 솔직히 말해서 취미에 썩 맞지도 않는 것도 있어 처음 2-3회만 보다가 그만둬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서편제'라고 답하겠다. 이 밖에도 버리기 힘든 매력적인 영화, 좋은 영화는 많았으되 역시 스토리나 영상, 기타의 모든 요소에서 이 작품이 최고였다. 그리고 라스트 신이 기막히게 좋았다.
일찍부터 '좋은 영화는 라스트 신으로 판가름난다'고 주장해온 나로서는, 그 라스트 신이야말로 '서편제'를 불멸의 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 전편(23회)을 단숨에 다 보았다. 여태껏 본 드라마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은 수준에다 감동적이었다. TV 드라마가 흔히 그렇듯이 늘어지는 감도 없진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깊이 있는 드라마였다.
특히 마지막 회가 압권이었는데, 이 역시 라스트 신이 좋았다.
처형되기 직전인 사형수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토록 박진감 있게 표현한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 이은 라스트 신…….
서산 너머 해가 지며 서서히 사방에 어둠이 짙어 간다. 어스름이 내리는 가운데 말이 없는 두 사람. 떨어지는 해는 저마다 친구의, 연인의 죽음을 상징한다. 또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기도 한다. 멋진 영상이다. 동시에 해는 다시 떠오르는지라 새 시대의 개막도 예고하고 있다.
젊은 시절 나는 베르히만도, 안토니오니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껏 본 영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하고 물으면, 단연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도 이보다 더 나은 마무리는 없지 싶을 정도로 멋진 엔딩이었다. 니노 로타의 음악도 좋았다.
그리고 다시 수없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라스트 신을 묻는다면, 서슴없이 '마지막 다리'의 라스트 신을 꼽겠다. 1950년대 중반에 서독과 유고의 합작으로 찍은 이 영화를 내가 본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줄거리를 얘기하지 않고는 라스트 신을 설명할 수 없지만, 여기서 영화를 해설할 만한 여유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아주 간단히 소개하면, 2차 대전 중 유고에서 레지스탕스 소탕에 나선 독일군 여성 군의관이 포로로 잡혀 적과 행동을 함께 하며 의사로서 인도적인 응급처치 등을 하다 그들과 정이 든다. 그러다 마지막에 그녀는 포로 교환으로 레지스탕스에서 풀려나 독일군 부대로 돌아가게 된다. 계곡에 걸린 낡은 석교(石橋)를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던 양군은 잠시 총격을 멈추고 포로를 교환하기로 해 그녀는 유고 레지스탕스 쪽에서 독일군 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녀는 동포이며 연인이었던 지휘관이 있는 아군 독일 쪽으로도, 적이지만 인간적인 친밀감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대장이 있는 레지스탕스 쪽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다리 중간에 웅크리고 앉고 만다.
이윽고 어디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총격이 시작된다.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면서 다리도, 웅크린 사람의 모습도 작아지는 가운데 총성만이 커지다가 영화는 끝난다.
이번 칼럼에서 '라스트 신'을 테마로 한 까닭은 귀국 발령이 나서 성북동 서재와도 작별을 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칼럼도 이로써 마지막으로 라스트 신이 아닌 '라스트 칼럼'이다.
보통은 한국을 떠나는 심경을 고해야 하겠지만, 말로는 이를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오래 전 맥아더 원수가 퇴임 연설의 말미에서 한 말을 빌려 '노(老)외교관은 그저 사라질 뿐(they just fade away)'.
칼럼 '성북동의 서재에서'도 여기서 '페이드아웃(fade-out)'이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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