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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Dromedary(드로메다리), 若沖(자쿠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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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그 옛날 조선시대에 북쪽의 북악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택해 '한성(漢城)'이라 이름짓고 수도로 정한 때부터 내려온 도시로서, 이 네 산을 일러 '내사산(內四山)'이라 한다고 들었다.
그중 세 산은 알고 있었지만, 낙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곳에 온 지 1년 반이나 지난 뒤였다. 화제에 올랐을 때, "그 산이 어딨냐?"고 내가 묻자 "저기, 대학로 뒤쪽에 있는 그거요." 해서 순간 어리둥절했다. 주변에 산다운 산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나는 당장 낙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지금은 중턱까지 아파트가 우뚝 들어서 본모습을 잃었지만 제법 높직했다. 이 산이 낙산으로,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눈에 굽어보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요즘은 훌륭한 공원으로 정비되었으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경관도 색다르고 참신했다. 산을 내려가면 곧바로 대학로의 번화가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그 이름이었다. 낙산공원의 전시관내 설명문에 의하면, 이 산은 예로부터 '낙산(駱山)' 또는 '타락산(駝駱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전자는 그 모양이 낙타 등을 닮았다 하여, 후자는 '우유의 산'이란 뜻으로서 궁중에 우유를 공급하던 곳이라 하여 우유의 다른 말인 타락에서 유래했다 한다. '우유 산'이란 이름도 재미있지만, '낙타산'이란 유래가 흥미를 더 북돋는다.
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나는 낙타에 얽힌 이야기를 좋아하므로 왜 한국의 수도 서울의 산 이름이 서식하지도 않는 낙타에서 유래했을까 궁금했다.
당시 이 나라는 일상생활에서 낙타를 볼 수는 없어도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옛날 중국에는 고비사막 쪽에서 낙타가 들어왔던 모양이나 그것은 혹이 둘 달린 쌍봉낙타였다. 이는 당삼채(唐三彩)의 낙타 소상(塑像)이 다수 남아 있어 한반도에서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않았나 생각되며, 실물을 본 사람도 있을 것으로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지식을 통해 쌍봉낙타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낙산'이란 이름도 혹이 둘인 쌍봉낙타의 이미지에서 따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주위에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옛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낙산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옛 그림 지도가 있기에 어떤 모양인지 찾아보았다.
1840년대에 제작된 서울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보니 어찌된 일인지 이름은 '낙산'이 아닌 '타락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되 그림은 볼록볼록한 형상을 하고 있어 확실히 쌍봉낙타의 혹처럼 생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세계 사람들에게 낙타 그림을 그려보라면 틀림없이 태반이 혹 하나의 단봉낙타를 그릴 게다.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서단(西端), 그리고 아프리카 사막에 이르는 지역에서 사는 낙타는 단봉낙타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낙타는 'Camel'이지만 이는 단봉과 쌍봉낙타를 아우르는 총칭이며, 본디 단봉낙타는 'Dromedary'라 부른다고 한다.)
단봉낙타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낙산처럼 볼록볼록한 모습의 산에다 'Dromedary'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낙산의 봉우리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한반도에는 언제쯤 단봉낙타가 알려졌을까. 아직 거기까진 조사를 하지 못했다.
실은 이웃 일본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에 단봉낙타를 들여와 숱한 구경꾼이 몰릴 만큼 인기를 독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왠지 암수 한 쌍을 들여온 듯, 그 이후 일본에는 낙타는 암수가 꼭 붙어 다닌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겼다, 그래서 일본 동요
<달의 사막(月の砂漠)>도 두 마리의 낙타가 '왕자님과 공주님'을 태우고 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는 해설도 있다. 하지만 중동지역에서 낙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낙타는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에도시대 중엽 교토(京都)에서 활약했던 이토 자쿠츄(伊藤若沖:1716-1800)라는 화가가 있는데, 몇 십년 전부터 일본에서 '재조명'을 받아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화가의 특별전이 지난 해 열렸다.
한국에 있다 보니 실제로 전시회는 보지 못했으나 잠시 귀국했다가 우연히 여기저기서 포스터를 보았다. 그런데 포스터에는 단봉낙타가 그것도 2마리나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암수 한 쌍일까.) 그의 작품 중 어느 것인가를 포스터에 사용한 모양이다. 자쿠츄는 실물 사생을 으뜸으로 쳤다 하며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이므로 실제로 단봉낙타를 봤으리라 생각한다.

오래 전, 유럽의 어느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그림을 봤다.
근세 초기의 화가의 그림이었던 걸로 생각하는데, 다양한 인물과 또 갖가지 동물들이 세밀히 묘사된 그림 속에 놀랍게도 단봉낙타와 쌍봉낙타가 둘 다 있었다.
사람은 각자의 선입관에 따라 혹 둘 달린 쌍봉낙타(동북아시아인)나 혹 하나의 단봉낙타(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중 어느 하나만 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이를 둘 다 그린 화가의 지식과 관찰력에 감탄했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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