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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이 지난 후부터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겨울철에는 일본 방송의 7시 아침 뉴스를 볼 때쯤 이곳 성북동 서재의 창밖은 아직 캄캄했으나, 요즘은 동녘 하늘이 어느새
훤하다. 7시 전에 해가 뜨면 서울은 이미 봄이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겨우내 캄캄할 때 일어나 NHK의 7시 뉴스에 채널을 맞추면 도쿄 어딘가에, 예를 들면 레인보우 브리지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생중계 장면으로 뉴스가 시작된다. 창밖의 어둠과 도쿄의 밝은 아침이 뚜렷한 대비를 이뤄 인상적이다. 겨울철의 도쿄와
서울은 같은 7시라도 이토록 다르다. 도쿄는 서울보다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 해 뜨는 시각이 50분 가까이 빠른 까닭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과 일본은 시차가 없다. 외국 관련 업무를 많이 해오느라 늘 시차에 시달려온 몸으로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왜 시차가 없는 것일까?
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것도 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시차가 있다. 런던-파리는 열차로 3시간 반밖에
안 걸릴 정도로 가깝고, 또 이 두 도시의 경도상의 차이는 2도밖에 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사실은 그간 시차가 없는 것을 당연시했으므로, 어느 날 그 이유가 명쾌한 형태로 제시된 순간 ‘아니, 그랬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 까닭은 경복궁에 있는 해시계 곧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 참조)의 설명문에 명시돼 있다.
거기에는 ‘현재 우리(한국)가 사용하는 표준시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평균태양시”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도 마찬가지로 13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양국이 시차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데는 24시간이 걸리므로 세계는 24시간대로 나뉜다. 그리고 지구는 360도의 자오선
즉 경선(經線)으로 등분되어 있어 영국의 그리니치(Greenwich)를 통과하는 0도의 본초 자오선을 기준으로 15도마다
1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보면 중국은 동경 120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은 그보다 15도 동쪽의 13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중국보다 표준시가 1시간 빠르다.
한국은 동경 127도 30분선이 국토의 중앙을 동서로 가르고 있다. 다시 말해 120도를 기준으로 할 경우와 135도를
기준으로 할 경우의 시간대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도 한국은 한때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는 중국과도 일본과도 30분의 시차가 났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1961년 국제적 관행에 따라 그리니치 표준시와의 시차를 정수(整數)로 둔다는 이유에서 135도
기준으로 바꿨다고 한다. 현대와 같이 국제화가 진행된 세상에서 다른 많은 나라와의 시차가‘○시간 30분’인 것은 역시
비즈니스나 해외여행 때 불편하다는 것일 게다.
본디 표준시의 개념은 영국에서 철도망의 발달과 더불어 생긴 것이라고 문헌에 나와 있다. 그 때까지는 각 지역(도시나 마을)마다
각자의 진태양시(眞太陽時 : 태양의 위치를 측정하는 시간, 남중할 때가 정오)로 시간을 측정했다. 일정한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차 시각표를 만들 수 없다는 절실한 문제가 발생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전 세계도 그리니치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여 원칙적으로 15도마다 평균태양시를 정한 결과 시간차가 생기게 되었다.
그럼 만약 표준시의 개념이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일어나 파리를 통과하는 경도를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가정하면 어땠을까.
파리는 동경 2도 17분쯤이다. 런던과의 차이는 불과 얼마 안 돼 큰 차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를 일본과 한국에
적용하면 지금 135도의 경선(經線)이 지도로 보면 2도 17분쯤 동쪽으로 이동하는 셈이므로 한국의 대부분 지역은 이
파리를 기준으로 한 경도인 ‘신(新)’ 127도 30분선보다 서쪽에 자리하게 된다. 이 경우 한국은 ‘신(新)’ 동경
120도를 기준으로 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본과 1시간의 시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 영국의 철도망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발달했던 덕택에 오늘날 일본과 한국은 시차가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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