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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猪) · 돼지(豚), 돌고래(海豚), 복어(河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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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도 이번 호로 두 해째 접어든다. 돌이켜보면 제일 첫 회도 간 지(干支) 즉 십이지(十二支) 이야기였다. 일순(一巡)한
기념으로 지난 달에 이어 '돼지해와 멧돼지해' 이야기를 계속할까 한다. 아무쪼록 식상하다는 말씀은 말지어다.
지난달 어느 주말, 오랜만에 경복궁을 찾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한 파란 하늘이었다. 몹시 추웠다.
이는 올해가 '돼지띠'냐 '멧돼지띠'냐에 아직도 연연하고 있고, 특히 요전에 누군가에게 옛날 한국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가운데 '멧돼지' 얼굴을 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론 더욱 궁금했다. 때마침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07
정해년 돼지띠를 맞아 '복을 부르는 돼지' 특별전을 개최한다는 광고를 봤고, 또 민속박물관 앞뜰에 십이지 석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속박물관 앞에 있는 석상의 사진을 찍어 왔기에 여기 게재하거니와, 이는 돼지일까 멧돼지일까. 보시는 대로 튀어나온 엄니가
사태를 복잡 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특별전을 보고 더욱 아리송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부조(浮彫) 기법의 석상은 사진에서도 보듯이 엄니가 있고, 얼굴이
갸름하고 털이 많아 멧돼지처럼도 보인다. 또한 몇몇 전시물에는 비슷하게 멧돼지다 싶은 그림들도 있었다. 어쩌면 그 옛날
한반도에 십이지를 동물로 표현하는 방식이 전래됐을 무렵에는 아직 돼지가 보급되지 않았던 것 일까.
박물관 기념품 매장에서 황금빛 돼지 저금통을 팔고 있어 흥미로웠으 나 엄니는 없었다.
돼지 담론을 시작한 김에 '바다 돼지(海の豚)'와 '강 돼지(河の 豚)'이야기도 해보련다.
바다나 강에 사는 돼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의 돼지 '海豚' 는 '이루카(いるか)' 곧 '돌고래'를 가리킨다.
중국도 '海豚' 라고도 표기하나, 보통은 '海猪'라 쓰고 '하이쯔-'로 발음한다고 한다. 중국어에서 '저(猪)'는 돼지를
가리키므로 마찬가지인가 보다. 한편 일본은 '海豚'라 쓰고 '이루카'로 읽는다. 소위 훈독(訓讀) 이다. 그러나 이곳
한국에는 '海豚'이란 표기 없이 '돌고래'가 '이루카'를 뜻하는데, 이 두음의 '돌'은 돼지의 옛말인 '돋', '돝'에서
왔다는 것이다.
'河の豚(河豚)'라고 쓰면 일본에서는 물고기 '복어'를 가리키며, 'ふぐ(후구)'로 훈독한다. 중국에서도 'ふぐ'를 '河豚'으로
표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 깊었는데 발음은 당연히 달라서 '흐-튼'이라고 읽는다고 한다.
한국어로는 'ふぐ'는 '복어'다. 여기서 '어'는 '魚'이며, 그냥 '복'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일본어의 50음도 중 'は行(하 행)'에 대해 이런 주장이 있다. 아주 옛날에는 영어로 치면 'P' 발음이었던
것이 시대와 함께 변화해 중세 때는 'F'음이 되었다가 그 후 'H'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긴 'は'행이라도 'ふ(후)'는
'H'보다도 Who?의 'wh'음에 가깝다. 가령 '후지산(富士山)'은 FU-jisan이나 HU-jisan이란 영어 발음과는
달라서 Who-jisan에 가깝다.
만약 'ふ'를 옛날에는 'プ(푸)'로 발음했다면, 한국어의 '복어'(일본어 표기 및 발음은 'ポゴ(포고)'임)에 해당하는
일본어의 옛 발음은 'プグ(푸구)'였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원래는 같은 발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원형이 같거나 적어도 근사(近似)했음을 보여주 는 한 예인 듯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일본에서는 맛있는
'ふぐ'가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임에도 불구하고 '강의 돼지'를 뜻하는 '河豚'라는 한자 표기를 빈 것이 흥미를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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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껏 찾아간 경복궁은 광화문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있었다. 서울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는 설명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중심이라기보다는 쥘부채의 사북 위치에 있으면서 산을 등지고 거리가 부채꼴로 퍼져나가는 형국이라 할 것이다. 이런
구조는 현대의 서울이 일단 옛 성벽 밖으로 확산되고부터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전개되어 감으로써도 유지되고 있다. 이제
서울은 기본적으로 부채꼴의 도시다.
옛날에는 많은 도읍들이 그랬듯이 도로가 남북으로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쥘부채 손잡이의 사북에 해당하는
경복궁의 배치를 보면 세로축이 정남북의 선상에서 살짝 비켜 있다. 광화문도 옛 위치로 복원공사를 한다고 하는데, 지금보다
세종로를 조금 비스듬히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금 축(軸)의 방위를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확실히 북동북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 왜 그럴까 의아하게 여겼더니 광화문 복원에 관한 한 기사 중에, 새 광화문도 관악산을 바라보는 각도로
배치된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 왜 옛 서울의 궁궐이 관악산을 바라보도록 지어진 것일까?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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