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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DVD로 보다가 ‘춘향전’의 한 장
면에서 ‘어라!’싶었다. 연회 장면이었는데, 화면 뒤쪽에 곱게 단장한 여인이 손에 장죽을 들고 있었다.
춘향 이야기는 예로부터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라 들었
기에, 딱히 이유도 없이 멋대로 시대 배경을 담배나 장죽 같은 풍습이 있던 때보다 훨씬 전일 거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던 차라 의외였던 모양이다.
담배가 이 나라에 전래된 것은 언제일까. 스페인 사람이 신세계에서 원주민들로부터 배운 기호품인 이상 서기 1500년보다 더 먼저일 리는 없다. 신세계에서 서양을 거쳐 동양으로, 다시 그 끝자락인 한반도나 일본까지 도달하는 데는 적어도 50년, 줄잡아 100년 가까이는 걸리지 않았을까. 실제로 일본에서는 16세기 중반에 처음 들어와 16세기말 이후 담배 피는 풍습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사실 ‘춘향전’은 서기 1700년대에 쓰여져 차츰 민중의 사랑을 받으
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장죽을 손에 든 여인이 나와도 시대 고증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분이 가르쳐 주었다. 이 나라의 옛날 이야
기는 늘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로 시작한다고.
거기서 나는 또 고개를 갸웃했다.
민중들 사이에서 즐겨 전해온 옛날이야기라면, 근세에 이르기 훨씬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온 것이 아닌가? 호랑이가 담배를 피느냐 마느냐는 그만두고, 아무튼 담배라는 기호품이 전래된 시기 이후가 아니면 말머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 전승되어 오는 옛날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아주 옛날부터일 것이다.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옛날이야기의 도입부가 이 ‘호랑이와 담배’라는 말로 시작되기에 이른 것은 언제 적일까.
한편, 일본의 전래동화는 ‘옛날 옛적 한 곳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습니다.’라는 상투적 문구로 시작된다. ‘혀 잘린 참새(舌切り雀)’ ‘꽃 피우는 할아버지(花開爺)’ ‘복숭아 도령(桃太郞)’ 등이 유명한데, 문헌에 따르면 모두 무로마치(室町) 말엽부터 에도 시대(江戶時代) 중엽(서기로는 15-18세기쯤일까)에 걸쳐 확립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이 말은 영어 옛날이야기의 ‘Once upon a time’이란 상투어와 발상이 똑같다.
그러나 한국 쪽은 발상이 매우 독특하다. 사람이 담배를 피우기 훨씬 전인 그 옛날, 호랑이가 사람 행세를 하던 시절(?)이라는 발상일까. 호랑이가 외경(畏敬)의 대상인 걸까, 아니면 애교스러운 존재로 보였던 것일까.
이 같이 소박한 대목에서 일한은 차이가 있는가 하면, 일상적인 경우에서의 유사성(類似性)도 있다.
그 한 예가, 최근 알게 된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여보세요’의 어원이다. ‘여기 보세요’ ‘여기 좀 보세요’ 하고 부르던 데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이다.
일본어의 ‘もしもし(모시모시)’도 ‘もの、もうす(申す)’ 즉 ‘모노, 모오스(말씀 좀 드리겠다)’며 부르던 말에서 ‘申す, 申す(모오스, 모오스)’가 되었다가 다시 ‘もしもし(모시모시)’로 변했다고 한다. 양쪽 모두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 동일한 발상이다.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씀은 말지어다.
오래 전 살았던 한 나라에서는 전화 걸 때의 첫마디가 ‘もしもし’나 ‘여보세요’ 같이 상대방의 주의를 끌려는 말(발상)이 아니라 ‘너는 누구냐?’는 뜻이었다.
이는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당시, 자주 혼선을 일으켜 우선 정확하게 연결되었는지를 확인하던 데서 비롯된 것일까. 발생 경위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도 상대가 자신이 통화하려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인지도 모르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으로서는 ‘넌 누구냐니!’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역시 ‘여보세요’ 쪽이 ‘もしもし’라고 하는 일본인으로서는 친근하고 정답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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