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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유럽 국가를 일 때문에 방문했을 때다. 좀 여유가 생겨 현지인의 안내로 그 나라의 옛 종교 중심지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교회와 수도원과 종루(鐘樓) 등 호화찬란한 여러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안내인은 일본에서 공부해 일본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저건 ○○입니다, 그건 ○○입니다”라며 건물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에 그만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 건지 가늠이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일본어는 아주 잘했다. 하지만 지시대명사 용법이, 예를 들면 ‘그것(それ)’이라고 말한 것이 사실은 ‘저것(あれ)’을 가리키거나 해서 일본인의 감각하고는 어긋났다. 이 나라의 말이 인도 유럽어(語) 계통이라, 영어로 치면 ‘this’와 ‘that’의 2분법의 두뇌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사람은 모국어의 구조 때문에 ‘これ(이것), それ(그것), あれ(저것)’으로 위치관계에 따라 셋으로 나뉘는 일본어의 지시대명사를 일본인과 같은 감각으로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 한국어로 화제를 돌려보자. 내가 이곳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어라’ 하고 가볍게 놀란 일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의 한국어 수준은 1년여가 지났음에도 입문 단계로 아직 문턱도 넘어서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라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
한국어의 지시대명사도 일본어의 ‘こ, そ, あ’와 마찬가지로 ‘이, 그, 저’ 의 3분법이 아닌가!
사전에 따르면 일본어의 지시대명사는 위치에 따라 화자(話者)와 가까운 영역인 근칭(近稱), 듣는 이의 영역인 중칭(中稱),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인 원칭(遠稱), 그리고 불특정한 영역인 부정층(不定稱)으로 나뉜다. 사물을 가리키는 ‘これ(이것), それ(그것), あれ(저것), どれ(어느 것)’ 혹은 체언을 수식하는 ‘この(이), その(그), あの(저), どの(어느)’와 같은 형태이므로 흔히 ‘こそあど言葉(고소아도 코토바)’로도 불린다. 한국어도 처소를 가리켜 ‘여기, 거기, 저기, 어디’라고 하며, 그 밖에 관형사에서도 그렇듯이 하나하나의 말은 다를지언정 그 용법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역시 일한양국의 언어는 ‘고소아도 코토바’말고도 그렇지만, 말의 구조가 이토록 닮았을까 싶을 만큼 매우 비슷하다. 물론 발음이 사뭇 달라 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적인 의미에서는 천년, 2천년 전의 먼 옛날에는 상당히 가까운 뿌리였지 않겠는가 여겨진다. 그 때까지 일본어의 ‘고소아도 코토바’와 인도 유럽어의 지시대명사 용법의 차이에 일종의 긴장관계를 발견했던 차라, 한국어의 ‘이, 그, 저, 어느’ (‘이그저어 코토바(イ, ク, チョ, オ言葉)’라고나 할까)를 만났을 때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내가 예로부터 써온 일본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하나가 ‘다소가레(たそがれ)’란 말이다. ‘고소아도 코토바’도 포함된 단어라 화제로 삼아 보려 한다. 이 말은 ‘해질녘, 황혼’이란 뜻의 ‘유구레(夕暮れ)’의 또 다른 이름으로 그 어원이 참 멋지다.
‘다소가레(たそがれ)’는 ‘다(た)’‘소(そ)’‘카레(かれ)’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과 말이 합치면서 탁음화해 ‘가레(がれ)’가 되었다. ‘다(た)’는 지금의 ‘다레(だれ)’ 곧 ‘누구’에 해당되며, 이것이 ‘고소아도 코토바’의 하나다. ‘소(そ)’는 ‘(누구인)가’ 의 ‘가’, ‘카레(かれ)’는 ‘彼’로 ‘그(사람)’이란 뜻의 3인칭 대명사다. 다시 말해 본래는 ‘가레와 다레카(彼は誰か)’, ‘그는 누구인가’, 달리 말하면 ‘아노히토와 다레카(あの人は誰か)’.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의문문이다. 단지 주어와 술어가 도치(倒置)되었을 뿐. 땅거미가 내려 멀찍이 있는 사람을 분간하지 못해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때가 바로 ‘다소가레도키(黃昏時)’, ‘황혼녘’인 것이다. 이를테면 저녁노을이 희미해지고 밤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경계선의 불과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에는 이웃 동무들과 동네야구나 뭔가를 하면서 어둑어둑할 때까지 바깥에서 놀았다. 슬슬 동무의 얼굴도 공도 보이지 않을 무렵에야 다들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을 이제 더 이상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두 나라 모두, 요즘 어린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보습학원이다 레슨이다 하여, 또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하느라 ‘다소가레’까지 밖에서 노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소가레’는 ‘저게 누구냐’고 할 때까지 스스로 바깥에서 놀아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체득할 수 있는 말이기에, 만일 요즘 어린이들이 체험을 통해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면, ‘다소가레(란 말)’ 역시 황혼을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소가레’를 그리워하는 자가 ‘황혼’을 맞고 있는 것인가.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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