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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뉴스 중에 ‘포앙카레(Poincare, 1854-1912)의 Conjecture’라는 수학의 난제 해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100여년 전에 제기된 이래 숱한 수학자들이 도전했으나 증명하지 못하다가 최근 이를 증명한 학자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학자는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최고의 상 ‘필즈상(Fields Medal)’의 수상을 거부했다는 뉴스였다.
수학이라면 학창시절부터 골머리를 앓던 내가 수학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결코 아니나, ‘Conjecture’(일본에서는 ‘포앙카레의 예상’으로 번역됨)라는 개념이 지극히 논리적인 학문으로 생각했던 수학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과, 또 이를 증명하는 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Conjecture”(사전에는 추량, 추측, 억측으로 나와 있음)를 증명한다’란 어떤 것일까. 일상적인 세계에서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 어법이다.
화제를 바꿔서, 9월은 태풍의 계절이다. 그래서 일본 역사상 유명한 태풍 이야기를 해보련다. 13세기말에 원나라가 일본 침공을 시도했다. 당시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92-1333)였다. 원나라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대군을 파견했으나 규슈(九州) 지방의 하카타(博多) 근해에 집결한 그들은 제대로 상륙도 하기 전에 두 번 다 폭풍을 만나 대함대가 궤멸해 일본은 가까스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신이 일으킨 바람이 일본을 구했다 하여 이 두 차례의 폭풍을 ‘가미카제(神風)’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 ‘가미카제’ 전설과 관련하여, 최근 이 즈음의 일본역사 이야기를 다시 읽다가 뜻밖의 사실에 부딪쳤기에 소개할까 한다.
원의 첫 침공을 일컫는 1274년의 ‘文永の役(분에이노에키)’ 때는 첫날 일단 상륙한 적군에게 고전했던 일본 무사들이 이튿날 겁을 집어먹은 채 바닷가 쪽을 바라보니 적군이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측의 기록에 폭풍이 불었다는 언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그 때는 양력으로 치면 11월 하순이었으므로 태풍의 계절이 아니다. 따라서 원의 1차 침공을 물리친 것은 태풍의 힘이 아니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원의 제2차 침공인 1281년의 ‘고안노에키(弘安の役)’ 때는 양력 8월 16일 밤이라 계절적으로는 태풍을 만났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실제로 다카시마(鷹島) 섬 주변에 집결했던 적의 함대가 태풍 때문에 궤멸했다는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오히려 첫 번째 ‘분에이노에키’ 때의 갑작스런 적의 퇴각도 태풍 등에 의한 것이 틀림없다는 전설을 훗날 지어낸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최근의 유력한 학설이라 한다.
그렇다면 ‘분에이노에키’ 도 ‘가미카제’가 구했다는 설은 역사에 대한 ‘Conjecture’, 이 경우는 ‘억측’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고안노에키’ 때의 ‘가미카제’란 여름의 끝자락부터 가을에 걸쳐서 일본에 몰아치는 태풍이었다는 기록, 즉 글로 기록된 자료가 많다. 그렇지만, 과연 그 증명이 가능할까?
이 문제에 전념해온 해중(海中) 고고학자의 이야기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본 적이 있다. 원의 거대한 함대가 집결했던 이마리만(伊万里灣)의 해저를 조사해보니 옛 목조 함선의 잔해가 잔뜩 나왔다. 이로써 배가 무더기로 침몰한 것은 실증된 셈이다.
허나 침몰 원인이 태풍이라는 증거는 있는가?
그게 있었다.
해저에서 커다란 목조 닻이 여럿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는 곧 태풍이 휘몰아쳐 바다에 떠 있던 함정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밀리자 닻을 내렸으나 질질 끌려가다가 끝내 지탱을 못하고 침몰한 결과 생긴 현상일 터, 따라서 태풍이 불었다는 물증이라는 것이었다.
역사자료에 기록되어 있던 ‘고안노에키’ 때의 태풍에 대해 문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물증을 찾아 헤매는 이 진리탐구욕에 나는 감복했다.
태풍 이야기를 쓰다가 어릴 적 도쿄(東京)에서도 태풍이 몰려오면 야단법석을 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무 덧문에 못질을 하고, 정전에 대비하여 초를 준비하던 기억 등이다.
그리고 태풍의 눈이 머리 위를 통과할 즈음, 일순 반짝 얼굴을 내밀던 파란 하늘의 그 고요함이...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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