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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붓, 포, 소-(佛法僧)” 하고 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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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들어, 밤만 되면 이곳 성북동 서재의 건너편 숲 쪽에서 “웃, 옷, 오-”로도 들리는 삼박자의 묘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붓, 포, 소-”라는 울음소리가 틀림없다 싶어 귀를 기울이자, 확실히 “웃, 옷, 오-”가 아닌 “붓, 포, 소-”로 들린다. 일본에서는 “붓, 포, 소-” 하고 우는 새가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그런데 이곳 한국에서 저 유명한 새의 울음소리를 난생 처음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불교 신자가 많은 일본에서는 이 새의 울음소리가 한자로는 ‘붓포소(佛法僧)’ 즉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자라 하여 귀이 여겨왔다.
그러나 일본의 ‘붓포소’란 이름의 새는 사실 “붓, 포, 소-” 하고 울지는 않는다. 그럼 ‘붓포소’란 새가 “붓, 포, 소-” 하고 울지 않으면 어떤 새가 그리 울까?
“붓, 포, 소-” 하고 우는 새소리는 여기 성북동이 그러하듯 일본에서도 밤에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서만. 따라서 그 실제 모습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새일 거란 짐작으로 모두들 부르게 된 것이 ‘붓포소(佛法僧)’란 이름으로서 학명(學名)은 ‘Eurystomus orientalis’라고 한다.
그런데 문헌에 따르면, 일본에서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한 1930년대에 실제로 “붓, 포, 소-” 하고 우는 새소리를 실황 방송했다. 그러자 방송을 들은 한 사람이 자기 집에서 키우는 새랑 우는 소리가 똑같다기에 확인해본 결과, 웬걸 옛날부터 ‘붓포소(佛法僧)’라 하던 새와는 전혀 다른 ‘고노하즈쿠’ 곧 올빼미과의 ‘소쩍새’였다. 즉 ‘붓포소(佛法僧)’란 새는 이름과는 달리 “붓, 포, 소-” 하고 울지 않음이 실증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한국에서는 “붓, 포, 소-” 하고 우는 이 새를 뭐라고 부를까? 한국어로도 “붓, 포, 소-” 하고 우는 새가 있긴 한 걸까?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한테 ‘저기, “왕왕” 하고 짖는 동물을 한국에선 뭐라 하나요?’ 라고 묻는다손 치자. 그러나 한국의 개는 “왕왕”이 아니라 “멍멍” 하고 짖으니까 대답이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우선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와 마찬가지로 “붓, 포, 소-” 하고 우는 새의 이름은? 하고 물어도 대답이 즉석에서 돌아올 리 만무하다. 새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거나, 학명(學名)으로 되짚어 찾는 수밖에 없다. 참고로 ‘고노하즈쿠’의 학명은 ‘Otus scops’라 한다.
어떤 사람이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이 새는 “소쩍 소쩍” 또는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울어 ‘소쩍새’라 불리는데, 이 새가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울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다. 한국에서도 이 울음소리는 상서롭게 여기는 모양이다.
만일 이 새에게도 사람과 같은 인지력이 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중얼거렸을 게다.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운다는 것은 나를 말함인가’ 혼잣말하는 고노하즈쿠, 혹은
‘“붓포소-” 하고 운다는 것은 나를 말함인가’ 하는 소쩍새.
이문화(異文化) 사이에 이야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화두인가 하는 점에서 인식이 일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붓포소-” 하고 우는 새를 여기서는 뭐라 부릅니까?’ 하는 질문이 어딘가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지만, 우리 대화 속에서 서로의 선입관이랄까 ‘인식의 전제가 되는 틀’이 앞서는 바람에 이야기가 성립되는 성싶어도 사실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닐는지.
‘인식의 전제가 되는 틀’ 혹은 선입관이란 벽의 저 너머에 있는 실증적인 세계에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을까.
어느덧 6월. 이곳 성북동 서재에도 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주한일본대사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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