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일본대사관 총무공사
스즈키 히로시(鈴木浩)

서울에 온 것이 지난해 1월말, 즐거운 시간의 흐름은 정말 빠르다고 느끼는 나날입니다.
많은 곳을 방문하고 많은 분을 만난 한국에서의 1년이었습니다.
가족과 돌아본 부산, 춘천, 제주도, 수원, DMZ, 안동 하회마을, 강진, 강화도, 천안, 경주, 익산, 전주, 대구, 용평 하나 하나가 즐거운 추억이지만 생각케 하는 점도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주재했던 나라에서는 별로 느끼지 못한 점인데, 한국은 공감 가는 부분도 참 많고, 특히 소박한 시골에서는 그리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돌아가신 조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된 적도 있었습니다. 깍듯한 예의나 따뜻한 마음도 일본인이 어느덧 잃어버린 것입니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걷던 한국 땅은, 우리 가족의 더 없이 소중한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경주 황룡사지에서 언덕 너머로 지는 희미한 석양 빛을 받으면서 주춧돌을 세며 일찍이 웅장한 탑과 가람이 솟아있는 경내를, 스님이 오갔을 그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던 것도, 하회마을의 초가지붕에 걸린 둥그런 보름달도, 밤 늦게 산책 나간 우리를 문 앞에서 기다려준 숙박 집 주인과 만든 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소박한 향토음식도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억 속에 빛을 더해준 것은 이 나라의 세련된 미의식(美意識)입니다.
나는 미국, 이탈리아, 이란(=페르시아)에 살았었는데, 특히 이탈리아와 이란은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땅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한국에서 발견했습니다.
지은 지 500년 된 한옥에 묵었던 여름 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 보다 회반죽으로 척척 메운 들보에 온 가족이 ‘아름답다’고 탄성을 질렀던 생각이 납니다. 일본에는 직선의 미가 있습니다. 다듬어진 직선이 만들어내는 단순하고 강건한 아름다움. 이것이 일본의 미입니다. 이탈리아의 미는 곡선의 미입니다. 미켈란젤로나 베르니니의 조각은 인체의 곡선을 여과없이 표현하여 완벽한 볼륨감을 보여줍니다. 페르시아의 미는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간 복잡한 문양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미는 그 어느 쪽도 아니면서 모든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닫이문이나 마루 등 직선이 많은 한옥에 섞인 휘어진 들보. 또한 나전칠기함 하나에도 다양한 아름다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금속장식이 붙은 직선의 외형과 칠흑의 차가운 표면, 그러나 거기에는 아름다운 곡선으로 수놓은 따사로운 자개 빛깔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한국의 색채감각에도 높은 미의식이 드러납니다. 대수롭지 않은 보통 옷감에 어울리기 힘든 강한 개성의 색을 조합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와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개성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야말로 한국의 다이내믹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개성을 조화시키며 하나의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한국의 미(美)처럼 일본과 한국도 두 개의 개성이 다른 나라끼리 서로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일 없이 멋진 조화를 이루어낸다면, 그리고 역동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눈만이 아니라 세계인의 눈에도 신선한 미의 결정(結晶)으로 비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