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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대사관
정치부 공사 미즈코시 히데아키(水越英明)
작년 10월 부임했을 당시의 한국의 인상을 ‘10년만의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새소식>에 기고했었다. 그로부터 벌써 1년이 흘렀다.
그때는 막 부임했던 터라 금방 눈에 띄는 내용을 썼지만, 이번에는 1년에 걸쳐 한국을 관찰한 뒤, 지난번 근무(1996년 8월부터 1999년 2월) 이래 한국의 바뀐 점이나 일한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좀더 파고들어 보고자 한다.
1년 동안 한국에 다시 거주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역시 한국이 지난번보다 여러 면에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도 제일 먼저 극복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경제의 순조로운 발전이 가장 큰 배경이 지만, 이를 토대로 국민의식 면에서도 여유가 생기고 여러 면에서 선진국형으로 의식이 향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요즘 서울 시내에서는 몇 가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근의 공사는 경관 미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세종로 한가운데 공원을 만든 것도 그렇고, 지하철 명동역 근처의 퇴계로와 반포로의 교차점에 있던 고가도로가 철거된 것도 경관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인 듯하다. 인사동이나 삼청동 등에서도 한옥을 활용한 멋스러운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고, 또 수원화성 등의 관광명소도 오랜만에 가보니 예전보다 잘 정비되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또한 생활 면에서도 맛있는 커피(예전에는 찻집에 가더라도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었다), 외국 와인, 고급 일본술, 치즈와 허브류, 본격적인 프랑스 빵 등 다양한 수입식품이나 고급식품을 자유롭게 구입하게 되면서 풍요로운 소비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고생하던 시절은 끝나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외국여행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한국 이미지의 브랜드화’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 내가 보는 바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는 착실히 상승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DAC(개발지원위원회) 가입이 결정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다. 지난 근무 때, 한국은 논의를 거듭하여 OECD 가입을 결정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 DAC 가입은 선진국으로서의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저 원조를 받던 나라가 DAC에 가입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한국은 내년 G20의 주최국이기도 하다. 국제무대에서 이러한 한국의 약진 혹은 위상제고가 일한간에도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낳고 있다. 일본도 옛날에는 ODA를 통해 한국을 지원했었지만, 지금은 함께 원조를 제공하는 쪽이다.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이미 일한 협력안건을 가동 중인데, 앞으로 더 많은 나라에서 일한협력을 추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와 국제테러 등의 세계적인 문제에서도 깊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일한 양국간 관계의 현재는 어떠한가. 내가 부임한 후로 1년 동안 일한관계는 매우 순조로운 편이다.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회담이 1년 내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지난 10월 하토야마 총리 내외분의 한국방문은 한국에 대하여 두 분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애정도 함께하여 한국분들께 굉장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총리 방한 다음날, 각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총리부인과 대통령 부인이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가족처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 지난 1년 동안 가족이 한국에 살며 피부로 느낀 일한관계는 어떨까. 이번 한국체재에서는 함께 온 고교생 장남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을 알게 될 기회가 많았는데, 한국의 고교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드라마나 음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아들에게 가르쳐줄 정도라고 한다. 또한 한류 열풍 이후 일본인들도 K팝이나 한국 영화, 드라마에 밝아진 덕분에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교류할 때는 금방 공통의 화제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는 아직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지난 근무 때와는 큰 차이가 있다.
아내는 이화여자대학교 어학당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 비해 주재원 부인 가운데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사람이 현저하게 늘어난 데 놀랐다고 한다. 또 이 밖에도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라든가 한국인과의 교제라는 다양한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 자신은 내년이 일한합병 100년을 맞이하는 해라 한국의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거나 혹은 식민지지배 관련 사적을 방문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대문 형무소터, 제암리 교회터 등을 방문했지만, 모두가 매우 가슴 아픈 사적이었으며, 이러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이런 역사를 뛰어넘어 일본과 한국이 용케 지금 같은 관계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었다.
최근에는 경기도 안산시의 사할린 한인 정찰시설을 방문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일본의 식민지시절에 갖가지 이유로 남사할린으로 갔다가 전후에는 부득이 소련의 지배 하에 잔류하게 되었지만, 한국과 소련의 국교가 회복된 후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분들이다. 일본정부는 이 분들의 한국 귀환을 지원하고 거주시설의 건설비용도 지원해왔다. 마침 전에 근무할 때 안산시에 거주시설 건설이 결정된 배경도 있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던 터라 방문하여 시설을 견학하는 동시에 사할린에서 귀국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우 깨끗한 시설로서 안산시 직원들이 거주하시는 분들을 잘 돌봐주고 계셔서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 귀국한 거주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사할린에 남기고 온 자식들이나 손주들과 헤어져 사는 괴로움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가져온 결과로 인해 지금도 고충을 겪고 사는 분들이 계신 것이다.
매년 일본대사관 정치부에서는 3.1절이나 광복절의 대통령 연설내용을 외무성에 보고해왔는데, 올 3.1절 및 광복절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과거문제를 포함하여 일본에 대한 비판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이는 두 행사가 한국에서 점하는 의미나 한국 국민의 정서를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일한합병 100년을 앞두고 양국이 서로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자는 메시지를 침묵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우리 일본인은 대통령연설에 일본에 관한 발언이 없다고 해서 과거문제를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 무언(無言)의 무게를 단단히 받아들여, 하토야마 총리의 말처럼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를 갖고 한국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내년 2010년을 일한관계에 있어 더 큰 발전의 해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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