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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안내 >> 대사관 칼럼 >> 공사 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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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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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대사관
정치부 공사 미즈코시 히데아키(水越英明)
10월 15일 주한일본대사관 정치부장으로 부임한 미즈코시입니다. 1996년 8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주한일본대사관 정치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지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외무성에 들어와 바로 프랑스에서 연수를 하긴 했지만, 외교관으로서 대사관 근무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외국 생활을 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 그리고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있었던 첫 한국 근무는 숱한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 이런 멋진 추억이 많은 한국에서 다시 근무하게 된 것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0년만의 한국에 대해 여러분들이 변했냐고 물어보시는데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 한국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청계천 주변처럼 풍경이 완전히 바뀐 곳이 있는가 하면 ,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곳도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확실히 크게 변한 것도 많지만 별로 변하지 않은 구석도 있고, 한번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도 있습니다.
역시 지난 10년 동안의 큰 변화 중 하나는 IT의 영향입니다. 예전에 근무할 때는 휴대전화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전원도 금방 소모되어 삐삐를 사용했기에 휴대전화로 문자가 자꾸 들어오는 것이 신선합니다 (문자 보내는 법도 이미 익혔습니다).
지난 10년 IT가 사회를 크게 변화시킨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경우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보고 촛불집회에 모이거나 인터넷 상의 일부 악플로 인해 여배우 최진실 씨가 자살한 것 등을 보면 인터넷이 정치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보다도 큰 듯 싶습니다 . 그리고 청계천 복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의식의 고양과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전통적 남성중심사회로부터의 변화 등도 새로운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업무 관계로 자주 접하는 외교통상부의 경우 10년 전에는 여성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 지금은 새로 들어온 직원의 60% 정도가 여성이라고 합니다. 반면 이혼률의 증가나 저출산 문제 등도 일본 이상인 듯합니다 . 한국은 일단 변화가 시작되면 그 움직임이 일본보다 빠르다는 것이 저의 인상입니다.
한편 10년 전의 재현처럼 보이는 것으로는 경제와 남북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보면 1997년의 IMF 위기가 떠오릅니다. 물론 한국경제도 저력이 생겼기에 상황이 같다고는 보지 않지만 , 예를 들어 환율을 보면 1997년 당시에도 그때까지100엔에 700원쯤이던 것이 수 개월 만에 100엔에 1,400원을 넘어섰습니다. 또한 남북관계는 마침 첫 근무로 부임했던 1996년 8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이 있었고 그 후로도 황장엽 망명사건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 남북관계가 긴장되었습니다. 그 후 김대중, 노무현 양대통령 시대에 남북교류가 활발해져 한국국민의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히 약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시기도 있었지만 , 최근 다시 긴장관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일한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데모대가 대사관에 밀려오는 광경은 10년 전과 변함이 없지만, 양국의 일반국민 차원의 상호 이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전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금지되었던 일본의 대중문화도 개방되어, 거리에서 J-POP이 흘러나오는 광경도 드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 10년 전 근무할 때는,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근무 기간 중에 한국에 놀러 온 친구도 별로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한류 붐의 영향으로 많은 일본 친구들이 한국근무를 부러워했고 , 아내의 친구들은 도대체 얼마나 놀러 올지 걱정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 가운데 일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는 사람도 꽤 늘어난 것 같습니다 .
이렇게 10년 동안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역시 일한의 유대가 두터워졌다는 사실이야말로 10년 만에 한국에 살면서 가장 기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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