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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으나 닮지 않은 우리, 그래도 닮은 우리 - 젓가락과 건배와 연회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
기지마 요시코(貴島善子)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은 모두 젓가락을 사용한다. 하지만 모양은 미묘한 차이가 난다. 한국의 젓가락은 금속제로 끝이 별로 뾰족하지 않으며, 보통 식당에서 큼직한 수저통에 담아 내오는 것은 하나같이 납작한 칼국수 같은 모양이다. 일본 젓가락은 목제품이 많고 끝이 가늘며, 옻칠한 것을 귀히 여긴다. 중국 것은 죽제품이나 목제가 많지만, 요즘은 플라스틱 제품도 흔하다. 그리고 길고 네모난 데다가 굵직하며, 젓가락 끝도 거의 뾰족하지 않다.
  그 때문일까. 서로의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나이프나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반갑지만, 막상 먹기 시작하면 "어머, 좀 불편하네!" 하며 젓가락 담론이 시작된다. 이어 옆자리 사람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딘지 달라, 보기 사나워라!" 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여행자를 보며 '외국 사람인가? 먹는 게 별나네, 버릇하고는!'이란 생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밥그릇을 들고 먹느냐 상에 놓고 먹느냐, 밥을 국에 마나 찻물을 밥에 붓나, 밥을 숟가락으로 먹나 젓가락으로 먹나 등등, 세 나라의 풍습은 여러 모로 조금씩 미묘하게 다르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모습에다 젓가락질까지 제대로 하다 보니 '저 사람들은 외국인이라 익숙하지 않은 거야'라고 이해하기 전에 '버릇이 안 좋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서로의 나라를 방문해 손님으로 연회에 초청되어 가보면, 참말이지 그 열기도 닮은 듯 다르다. 아무튼 양이나 가짓수나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줄곧 술을 권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서양인과 비교해 동양인은 체내의 알콜 분해효소가 적다는 데도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건배를 강요한다.
  하지만 건배 방식은 다소 다른 것 같다. 중국인은 대체로 뭔가를 기리거나 축원하며 건배한다. '건강을 위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실은 우리가 동향(同鄕)인 것을 축하하며!' 등등. 한국인은 여기에다 자신과 상대방의 우정을 확인하는 건배를 교환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본인은 가까워지기 위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건배한다. 중국인은 건배가 끝나기 무섭게 서로 상대방의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다음 건배 제의에 대비한다. 한국인은 건배할 대상을 붙잡고 먼저 자기 잔을 비운 뒤, 그 잔에 술을 따라 상대에게 권한다. 일본인은 인사하고 싶은 사람에게 술을 따르고, 자기 잔에 술을 받음으로써 건배에 들어간다. 자작(自酌)이 많은 것은 일본, 중국, 한국 순서라는 설도 있다. 이런 연회의 진행 방식을 모르면 속으로 서로 결례니 차가운 사람이니 집요하다느니 하며, 술자리가 무르익음에 따라 마음이 떠나 버린다.
  도구나 스타일이나 사고(思考)나 근원적으로는 같음에도 그것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서로 거리 두기나 관계 가꿔 나가기, 그 표현 방식, 또는 경의를 표하는 법이 나라마다 조금씩 바뀌어온 것일 게다. 그러므로 비교문화 담론을 나누노라면 끊임없이 흥미가 샘솟는다. 다만 인간은 이상한 존재인지라 닮았기에 되레 닮지 않은 구석이 눈에 두드러지고, 때론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좀 더 '개선'하면 '완벽'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부족하다' 싶은 것이리라. 서로 닮았다 보니, 제법 서로가 이모저모 비슷한 생각들을 하며 상대를 비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얄궂게도 서로 깨닫지 못할 뿐….  
  그러나 전혀 닮지 않은 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 일본 중국은 다 '닮았다.' 미국인 친구는 "한국, 일본, 중국 모두 파티 시작부터 끝까지 건배, 건배 하는 통에, 내 페이스대로 마시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고 투덜거린다. 멕시코 친구는 "건배로 상대방을 취하게 만드는 것은 용맹한 카우보이 폼을 재며 데킬라 마시기 시합이나 할 때 정도지만, 왜 보통 사람들이 사시사철 누가 술이 더 센가를 두고 경쟁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인도 친구는 "못 마신다고 하면 몹시 안 됐다는 표정을 짓고, 비난당하는 기분도 든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은 '상대방이 온 마음을 다해 날 접대하고 있는데 그에 부응해야지' 하고 연회의 취지는 익히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다소 당혹스럽더라도 이국(異國)에서 접대를 받을 때는 나도 한껏 맞추려고 노력한다. 또한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무튼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 나쁜 인상은 아니다. 매일 밤 술자리는 사양하고 싶지만, 연회의 취지에 비춰보면 결과는 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흥미 깊은 사실은, 별 인연이 없는 사람끼리는 비교문화 담론이 열기를 띠지 않는 것 같다는 것. "아, 다르군요."로 끝나고 만다. 저마다 풍토나 환경, 역사가 다르니까라는 설명에 납득이 간다. 한편 닮았으되 닮지 않은 문화 간의 비교담론은 자칫 어느 쪽이 우수한가, 역사가 긴가, 세련되었나 하고 우열을 다투는 식의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닮은 것' '닮지 않은 것'에는 각기 배경이 있음에 틀림없으며, 그 풍토나 환경이나 역사가 반영되고 발전한 결과의 산물로서 저마다 최고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SMAP은 히트곡 '세계에 하나뿐인 꽃(世界に一つだけの花)'에서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자고 노래하고 있다.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일-한-중 3국간의 왕래가 날로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 이 시간, 닮았으나 닮지 않은 우리, 그래도 닮은 우리이기에 바로 맛있는 음식과 마음이 담긴 건배와 아울러 즐거운 비교문화 담론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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