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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한국어
 
       
       
   

주한일본대사관 정치부 공사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자기 소개를 겸해 지금까지 저와 한국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서울에서의 대사관 근무는 이번이 2번째로 처음은 1999년3월부터 약2년간 정치부에서 남북관계, 한국의 외교정책 등을 담당했습니다. 원래 외무성에서 프랑스어 연수라 서울에 오기까 지 해외는 불어권에서만 근무했습니다. 파리 근무시, 한국 부임을 발령받고 프랑스 인이 보는 한국어 입문서를 사러다닌 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mademoisell = agassia' 라는 책이었는데 서울에 부임하고 나서 바로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버렸습니다. 서울 도착 당시의 인상은'처음으로 말이 안통하는 외국에 왔 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때는 외교부에 전화를 해 도 제일 먼저 수화기를 드는 비서가 대부분 한국어만 가능했고, 일본어를 할줄 아 는 한국인에 둘러싸인 술자리에서도 한국어 중심으로 되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또 당시 대사관 정치부에서 한국어가 전혀 안되는 사람은 나 혼자인 상황이라, 얼마동안 '과연 해쳐나갈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곤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외교부와의 업무는 영어가 통했고, 일상생활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을 도와주려는 친절한 한국분들 덕분에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면서도 서서히 서울 생활에 녹아들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어학당에 다니는 집사람의 한국어가 점점 향상되는 것을 보면서, 겨우 결심을 하고는 가정교사를 통해 한국어 개인레 슨을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사정상 레슨 일정이 취소되기도 하고 선생님이 바뀌기 도 하면서 좀처럼 오랫동안 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노래방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래를 한곡 외우면 그만큼 한국어가 향상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많은 음악CD를 구입하여 가사를 사전으로 찾아보고는 했습니다. 서툴지만 겨우 한국어로 업무를 보게 되자마자, 이번에는 일본으로 귀국하라고 해서 미련을 남겨둔 채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귀국하자마자 한류 붐이 일면서 업무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국어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K-POP, 한류영화, 드라마와 더불어 일본서 점에서는 한국문화를 소재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한국어 교재가 넘쳐났고, 신오쿠보에 가면 최신CD와 비디오도 입수할 수 있어 최근의 젊은이들 말로 일본에 와서도 한동안 한국은'내 맘 속의 붐'이었습니다. 해외출장시 비행기안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출장지에서도 현지의 한국요리점을 꼭 들렀기에 때로는 동행에게 폐를 끼치는 일도 있었지만, 한국문화에 흠뻑 빠져들어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 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나리타공항에서 바로 신승훈 콘서트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일본 근무가 5년반으로 접어들면서 내 맘 속의 한국 붐이 어느 정도 식 어가고 있을 즈음, 다시 한 번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이 너무 좋아 한국근무를 강력하게 희망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지만 솔직히 2번째 한국근무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 그동안 가끔씩 한국어도 접하고 있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예전에 근무할 때는 없었던 음성전자사전 이나 MP3등 다양한 어학참고서를 구입하여 한국어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부임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됐지만, 1년을 지나면서부터 내 뜻대로 읽을 수도 쓸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어휘도 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워도 외워도 잊어버렸고, 나중에는 한국어와 프랑스어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이대로는…. 이라고 생각할 때가 잦았습니다. 또한 일본에서처럼 한국음악과 영화를 즐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아니 잊고 싶어서 한국음악, 영화, 음식문화를 즐겼지만, 서울에서는 한국어가 아무래도 업무의 연장선상이라 최신 음성전자사전도 한류교재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40대 후반이 되면서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그러고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슬픈 외국어'라는 책이 있지요.

  익숙해지면 질리게 되고 다시 매너리즘으로 변해가겠지만, 올해는 어깨에 힘을 빼고 가급적 한국어 공부를 즐겨볼까 합니다.'슬픈 한국어'만큼은 안되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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