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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힘, 문화의 힘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尚史)
  

 

  1984~6년의 어학연수 중에는 신촌에서 하숙했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때라 연세대 하숙생과 탁구를 치고 막걸리를 마시는 것 말고는 영화를 보는 정도였다. 말공부도 겸해서 한국영화를 많이 봤다. 피카디리극장, 파고다극장, 명보극장. 그리고 광화문 남쪽이자 조선일보사 북쪽, 지금의 면세점 빌딩 자리에 ‘국제극장’이 있었다. 〈고래사냥〉은 안성기, 당시의 히트곡, 사회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 서울에서 본 영화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차르트의 인생을 그린 〈아마데우스〉(제57회 아카데미 작품상)다. 숱한 명곡과 멋진 영상에 압도되어 함께 영화를 본 한국 친구는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1990년의 미국영화 〈늑대와 춤을〉(제63회 아카데미 작품상)이 끝날 무렵 화면에 뜬 ‘인디언에게는 부족마다 규율이 있어, 대부분은 규율과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는 뜻의 짧은 캡션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백인사회의 박해에 쫒기고, 때로 학살당한 미국 인디언. 미개한 야만족, 조롱의 대상으로 이들을 그린 서부극도 많았다. 대여섯 살 적, 손을 입에 대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춤추는 인디언의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 자부심을 가진 인디언들과 백인 주인공의 마음의 교류를 그리고 있다. 직접 뭔가를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속의 편견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라가 다르고, 말이 다르고, 처지가 전혀 달라도 사람끼리는 잘 안다. 마음이 통한다. 웃음이 넘치고, 박수가 일고, 눈물을 자아낸다. 영웅의 좌절과 성공이거나, 사랑과 로맨스거나, 일상생활의 소소한 마음의 움직임이거나, 나라를 초월한 ‘공감’을 부른다. 그것이 문화의 힘, 진실한 인간성의 힘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경험하고, 평소 손이 닿지 않던 곳에 손이 닿는 쾌감,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2008~9년의 중국영화 〈쉬즈 더 원(非誠勿擾)〉. 새해 영화로 사상 최고의 히트를 친 펑 샤오강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다. 전반부는 항저우, 하이난, 베이징 등이, 후반부는 줄곧 일본 홋카이도가 무대다. 아름다운 경관과 일본인과의 마음의 교류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고, 일본 히트곡이(물론 일본어로 노래) 흐른다. 이 영화를 계기로 중국에서는 홋카이도 관광붐이 일어났다.

  “우리 세대의 영화 지망생은 모두, 젊을 때 일본영화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봤습니다.”라고 말하는 펑 감독. “이번에 대학 들어가는 딸애가 나도 모른 새 일본어 공부를 했더군요. 말도 웬만큼 해요.”라며 흐뭇하다는 듯 얘기했다.

  1980년대 전반 중국에서 외국영화라고 하면 일본영화를 가리켰다고 한다. 정치적 이유로 미국영화는 아직 들어오기 전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단조로운 정치 선전 영화밖에 모르던 중국 사람들은 참신하고 대담하며, 사회와 인간의 진실을 그리는 일본의 세련된 엔터테인먼트에 푹 빠졌다. 다카쿠라 켄(高倉健) 주연의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와 TV 드라마 〈오싱〉은 1억 명이 넘는 중국 사람들이 보았다고 한다.

  일본영화에 관한 저서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지인은 “일본영화는 래디컬(radical)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거침없이 본질을 그리는 힘이 있어요.” “잔재주라든가 더해서 둘로 쪼개는 식이 아니다. 일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일본문화의 특성입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영화, 문학, 음악, 만화 및 애니메이션, 연극 등 장르에 상관없이 문화는 그 나라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매체다. 오락,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국가와 국가의 상호이해를 진척시키는 큰 힘이다. “○○는 멋진 나라다”라고 어설픈 설교는 하지 않겠지만, 작품을 낳은 나라, 무대가 된 나라의 매력이나 긍정적인 인상을 안겨주고, 때로 존경심을 품게 한다.

  외교・안보・역사 등 국가 간의 현안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상대국에 대한 편견이나 적대감을 감쇄시키는 힘은 정부의 홍보보다 훨씬 커서 상호이해에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내가 영화에 마음을 빼앗긴 맨 처음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본 영국의 뮤지컬영화 〈치티치티 뱅뱅〉이다. 고교 시절은 〈7인의 사무라이〉와 〈모래 그릇〉. 〈7인의 사무라이〉는 스필버그 감독을 비롯하여 미국, 유럽, 중국 등 전세계의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작품의 모델이 된 구로사와 아키라(黒沢明) 감독의 명작이다. 〈모래 그릇〉은 동연배의 중국인과 이 영화 이야기 하나로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그 영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란 한 가지만으로 공통점이 없어 뵈는 두 사람이 공감했다. 중국 TV에서 〈모래 그릇〉 해설 프로그램을 본 일도 있다.

  애니메이션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웃집 토토로〉 〈슬램 덩크〉는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토토로〉를 몇 번이나 봤다는 한국 분은 주제가도 일본어로 외우고 있었다. 농구부의 청춘을 그린 〈슬램 덩크〉의 각 등장인물에 밝은 중국의 젊은이는 “중학 시절, 여자도 남자도 매일 농구를 했다”고 그리운 듯 말했다. 수년 전까지 이름난 축구선수였던 프랑스의 지단, 이탈리아의 토티가 축구를 시작한 하나의 계기도 일본만화 〈캡틴 쓰바사(翼)〉였다고 한다.

  지난번 서울근무 당시 단행된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도 있고 하여 일한이 상대국의 영화를 서로 즐기는 선순환이 시작되고, 〈쉬리〉와 〈러브 레터〉가 유행했다. 이것이 나중에 ‘한류 열풍’의 기반이 된다. 최근의 명작으로 꼽히는 한국영화는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효자동 이발사〉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상에 남는다. 시대의 분위기, 전쟁의 비참함을 웅변하는 국경을 뛰어넘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베이징 시절에는 영화관에서 50편의 영화를 봤는데, 이번 서울에서는 실은 아직 1편밖에 보지 못했다. 잘 아는 신문기자의 남동생이 출연한 〈최종병기 활〉이다. 서울에선 얼마나 볼 수 있으려는지, 인생의 추억이 될 영화를 만날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우리 일본공보문화원에서도 다양한 일본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니 대사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십시오.)

(번역 : 김경희 번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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