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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재미있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尚史)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인은 역시 한국어 공부에 유리해서 처음 듣는 단어도 짐작이 가는 경우가 있다. 캠퍼스를 걷다가 ‘도서관’이란 말이 들리면 ‘図書館(도쇼칸)’이려니 하고, 차를 타고서 ‘주차장’하면 ‘駐車場’밖에 없는 것이다. 사전을 찾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것은 처음 맛보는 쾌감으로 몇 번씩 사전을 찾아도 못 외우던 영어 단어와는 큰 차이가 났다. 처음 한국어를 배울 때, 야구 중계방송의 䃴번 타자’䃲루수’‘여유 있게 홈인’부분은 듣는 순간 이해가 돼 기뻤다.
  그렇다 해도 처음 석 달은 무척 고생했다. “나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말을 잘못합니다.”까지는 술술 말한다. 그러나 ‘뭐야, 잘 하잖아’하며 상대방이 좍 이야기하면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겸손하게 “별 말씀 다 하십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어미를 살짝 틀리게 “별 말씀 다 하십시오”라고 하는 바람에 화제가 된 친구도 있다.

  한국에 대한 흥미는 말에서 시작됐다. ‘쑥쑥’싹이 자라고, 깃발이 ‘나부끼다’(일본어는 ‘スクスク’、‘なびく’). 또 ‘なべ(나베)’와 ‘냄비’같은 낱말은 등이 오싹할 정도로 귀에 쏙 들어왔다. 키다리를 가리키는 일본어의 ‘のっぽ(놋포)’와 한국어 ‘높다’의 관련성, 아기의 먹을 것은 일본과 똑같이 ‘맘마(マンマ)’라니……하는 놀라움도 있었다. 일본어와 한국어 발음이 같거나 엇비슷한 한자어도 많다. ‘高速道路(고속도로)’‘調味料(조미료)’‘有料無料(유료무료)’‘計算(계산)’‘市民(시민)’‘温度(온도)’‘気分(기분)’‘道具(도구)’‘酸素(산소)’등.
  일본인은 한자어에 강하다. ‘조령모개’‘사면초가’‘인구에 회자되다’‘불구대천의 원수’같은 단어를 쓰며 의기양양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다. 혀도 잘 안 돌아가는 주제에 ‘유식한 말’을 하는 일본인 때문에 주위에선 당혹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외래어를 혼용하는 것도 일본과 비슷해서 ‘급커브’‘명콤비’‘프로야구’‘페인트칠’‘○○킬러’등등 수없이 많다. 반면에 ‘롱다리’나 ‘휴대폰’은 일본어에 없는 표현이다.
  ‘엔조이하다’‘다이내믹하다’‘샤프하다’‘센스가 있다’등은 일본에서도 같은 감각으로 쓰인다. 

  그 후 베이징에서 근무하게 되자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어순 및 문법이 일본어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어 쪽이 압도적으로 배우기 쉬웠다. 같은 한자여도 ‘調味料’등의 발음 차이는 상당히 커서 역시 일한이 가깝다. 현재까지 알고 있는 예외(일한의 발음은 다르고 일중은 비슷한)는 ‘豆腐’‘夫婦’정도다.
  중국에는 일본어나 일본문화 및 역사에 밝은 분이 많았다. 말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본에서 택시를 탔더니 ‘毎度ご乗車有難うございます(늘 승차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 ‘毎度, 乗車, 有難’이란 한자만 눈에 들어왔다. ‘有難’은 재난이 있다, 사고가 일어난다는 뜻. ‘탈 때마다 사고가 있다니, 어쩌다 이런 택시를 만났담!’하고 자신의 사나운 운수를 한탄하며 내내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또, 도쿄에서 문화행사에 참석한 한 중국 요인이 식순에 적힌 ‘○○会長挨拶(○○회장 인사)’에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挨拶’는 원래 막대기로 손가락을 비트는 형벌로 ‘일본까지 와서 남들 앞에서 고문을 당하다니’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가만 보니 일본인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挨拶’를 하고, 장내에는 웃음이 흐른다. ‘아, 고문이 아닌가 보다’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치사(致詞)’를 했다고 한다.

  한자는 글자 그대로 중국 것이다. 하지만 근대 초에 서구의 개념을 일본인이 한자로 표현한 많은 숙어들이 반대로 중국에 전파 보급되었다. ‘科學(과학)’‘民主(민주)’‘革命(혁명)’‘社會主義(사회주의)’‘政黨(정당)’‘哲學(철학)’‘共和國(공화국)’‘幹部(간부)’‘廣場(광장)’‘肯定・否定(긍정・부정)’‘主觀・客觀(주관・객관)’‘抽象・具體(추상・구체)’등은 일본제라는 것이 중국 논문이나 책에 나온다. 중국 연구자들은 별로 분한 기색도 없이 말하고, 쓰고 있다.
  같은가 하면 상당히 다르고, 놀랄 만큼 닮은 점도 있다. 흥미로움과 발견은 끝이 없다. 말에 얽힌 여러분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부디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건 그렇고, 11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사랑합니다, 고객님!’하는 전화 안내에 깜짝 놀랐다. ‘고객님’이란 호칭은 여기저기서 듣는다. 남자 직원도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80년대 롯데 백화점에서 일본식 애교와 공손함을 여직원에게 교육시키자 ‘위화감이 든다’고 보도됐던 것과는 딴판이다. 일본적인 고객 존중 자세에 미국적인 ‘사랑한다’는 표현을 접목시킨 것일 게다. 한류 드라마에도,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적극적이고 직설적인 ‘사랑한다’는 애정 표현이 자주 나온다. 드라마나 광고는 그렇다 치고, 한국에서는 과연 이런 말을 실제로 얼마나 할까. 말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좀처럼 짐작이 안 간다.

  외국어는 국가의 벽을 넘어선 상호이해의 가교다. 예술도 기술도 사상도 법률도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프랑스 민법전을 제정한 나폴레옹은 6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환했다. 먼 옛날 일본에서 고분을 축조하고 행정제도를 만들던 그 때는 집어삼킬 듯이 한자 문헌을 보며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있었을 터이고, 한반도의 선각자로부터 배운 바도 꽤 있을 것이다.
  어학을 통해 평소 모르던 세계를 접하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며, 평생의 벗을 얻을 수가 있다. 공리적으로 말하면 진학이나 취직에 유리하며, 외국과의 교섭이나 계약에서도 활약할 수 있고, 세계가 넓어진다. 다른 나라의 앞선 제도나 대응을 배워 자국에 기여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배우는 데 대한 비판도 예로부터 있었지만, 나 홀로식의 독선은 자국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때 공포한  䃵개조 서문(五箇条の御誓文)’에는 ‘지식을 세계에서 구한다’는 국정 방침이 강조되어 있다. 당시 외국어학교나 군인학교에서는 지금보다 철저한 외국어교육이 이루어졌다.
  진정한 ‘애국’은 ‘국제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공부는 그 기반이다.

  (다음 예정: ‘베이징에서 본 중국과 한국’)
  번역 : 김경희 번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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