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스즈키 히로시(鈴木 浩)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공보문화원장으로 취임한 스즈키 히로시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저는 2009년 1월말 서울에 부임하여 그간 일본대사관에서 총무공사로 일해 왔습니다. 다카하시 다에코 전원장이 7월말 귀국한 후, 공보문화원장을 겸직하다가 9월 중순에 총무부장 후임이 부임해옴에 따라 추석이 지나고 정식 취임했습니다. 총무공사로 있을 때는 대사관 내에서의 일이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공보문화원장으로서 대사관 밖으로 나갈 기회가 늘어날 것이므로 여러 방면의 분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기회이니 간단히 제 소개를 하기로 하지요.
태어난 곳은 교토시(京都市), 자란 곳은 교토부(京都府)의 우지시(宇治市)입니다. 중고교는 교토 시내의 학교를 다녔고, 대학 시절은 도쿄(東京)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외무성에 입성한 것이 1985년이니까 올해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지 25년입니다. 서울은 5번째 해외 근무지이며 지금까지 보스턴, 워싱턴, 로마, 테헤란에서 주재했었습니다.
보스턴은 1986년부터 88년까지 프렛처 스쿨 법률외교대학원에서 연수했습니다. 프렛처 스쿨을 졸업한 후 워싱턴 일본대사관에서 88년부터 90년까지 근무했습니다. 첫 1년은 총무, 2년째는 의전에서 대사 비서로 있었는데, 그 당시는 일미간 무역마찰이 심했던 때로 평균 수면시간 3~4시간의 격무였습니다.
1990년 귀국 후 약 10년간은 외무성에서 4개의 포스트를 거쳤습니다. 맨 처음 90년부터 92년까지는 남아시아 담당관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을 담당했습니다. 이어서 92년부터 3년간은 북미1과의 과장보좌로서 정치적 측면에서의 일미관계 매니지먼트에 관여했습니다. 세 번째는 95년 WTO가 창설됨에 따라 WTO담당과의 과장보좌로서 2년간 국제무역 관련의 일을 했습니다. 달마다 제네바에 출장을 갔고, 도쿄에 있어도 밥 먹듯 철야를 해야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끝으로 97년부터 2년 반 동안 서구 1과의 수석사무관으로 있으면서 서구 여러 나라나 EU, NATO 등과의 관계촉진에 종사했습니다.
1999년 여름, 다시 해외근무를 하게 되어 로마 대사관에서 2년여 정무참사관을 지냈습니다. 2001년 여름 제노바 G8 서미트가 열렸는데, 데모대에서 사상자가 나올 만큼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후 9.11 테러가 일어남에 따라 이란에 근무하게 되어 약 3년간 정무참사관을 지냈습니다. 테헤란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출장 명령을 받고 연락사무소장으로 한 달간 체재하며 대사관을 재개시켰습니다.
2004년 여름 이란에서 귀국하여 신설된 제4국제정보관으로 1년간 일했습니다. 당시는 자위대가 이라크 사마와에 주둔했던 때라 이라크 정세를 상세히 추적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태반을 차지했습니다. 2005년 여름에는 총리 집무실인 관저로 파견되어 호소다(細田) 관방장관, 그리고 아베(安倍) 관방장관의 비서관을 약 1년간 했습니다. 2006년 9월 아베 관방장관이 총리로 취임함에 따라 총리관저 내에서 내각 부광보관으로 자리 이동이 되어 총리 외신 대변인을 1년 반 했습니다.
2008년 1월 총리관저 파견을 마치고 외무성으로 돌아와서도 국제보도관으로서 외신 대변인 역할을 1년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1월말 한국에 부임했습니다. 그 때까지 한국에는 2차례 출장 온 일이 있습니다. 맨 처음이 2006년 10월 아베 총리의 한국방문 때 총리의 외신 대변인으로 수행했습니다. 그 때는 정부 전용기로 하늘을 날고 있는 와중에 북조선(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제1보가 날아드는 바람에 서울에 도착하기 무섭게 일본정부의 입장을 외신을 향해 발표하는 등 정신 없이 바쁜 출장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2008년 2월 하순 후쿠다(福田)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던 때로, 역시 내각 부광보관으로서 총리를 수행했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매우 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간 대사관에서 맡았던 총무공사의 일은 총리 및 외무대신 등 요인 한국방문 시의 의전업무 총책임자 그리고 인사, 회계, 경비, 통신 같은 관방 사항 즉 사무 총괄, 대규모 행사나 긴급사태 대응 시의 종합조정 등 다방면에 걸쳐 있어 서울 부임 후 눈 깜짝할 사이에 1년 반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가족은 아내와 딸 하나의 3인 가족으로 모두 한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일본의 새소식’ 지난 3월호에 “한국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으로 이곳 생활을 얼마나 즐겁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쓴 적이 있으니 부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쉽게도 가족은 딸애의 학교문제로 3월말 귀국했지만, 두 사람 다 방학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어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곧장 한국으로 날아오곤 합니다.
공보문화원장에 취임하고 나서 총무공사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점은, 주말에도 자주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어연극발표대회, 일한교류스피치대회, 일한가라오케대회, 일본유학설명회 등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말에 하는 행사가 많습니다. 이런 문화교류행사에 참석하며 느낀 것은, 참으로 다채로운 분야에 걸쳐 일한양국 간에 마음 따뜻한 시민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보문화원장으로서 이 같은 일한간의 문화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공보면에서도 한층 노력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본의 모습을 전달함으로써 한국의 대일 이해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일본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볼 때도 일본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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