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다카하시 다에코(髙橋妙子)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공보문화원의 활동 폭이 점점 넓어지는 바람에 좀처럼 달마다‘원장 칼럼’을 싣지 못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여러분께 꼭 알리고 싶은 일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2년 전, 그러니까 2008년 2월호의 칼럼‘백제사랑’을 기억하시는지요? 일본 미야자키현(宮崎県)의 미사토초 난고쿠(美郷町 南郷区)를 방문하여 그 곳에 전해 내려오는‘시와스 마쓰리(師走祭り)’에 대해 쓴 글입니다. 미야자키현 인근에는 백제 왕족에 얽힌 전설들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옛날 백제 왕족들이 정적을 피해 이주해왔으나 추격대에게 발각되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부자(父子)의 영령(英靈)을 100km나 떨어진 미카도 신사(神門神社)와 히키 신사(比木神社)에 각각 모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설을 뒷받침하듯 13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음력 섣달, 양력으로 1월이면 히키 신사에 모신 왕자의 영령을 미카도 신사까지 모시고 가 부왕의 영령과 만나게 하는 제례가 이 고장 사람들의 손으로 계속돼오고 있습니다. 2년 전, 이 ‘시와스 마쓰리’를 보러 미야자키까지 갔던 나는 온전히 매료되어 ‘백제사랑’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다 실은 최근에, 정확히는 작년 11월과 올 1월에 두 차례 미사토초를 다시 찾음으로써 세 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미사토초와 충청남도 부여읍의 자매도시결연 조인식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2008년 2월의 <새소식> 칼럼이 미사토초 관계자의 마음에 들었던지, 조인식을 계기로‘백제는 말한다 - 일한교류에의 제언’이란 테마로 기념강연을 해달라는 의뢰가 왔습니다.
보통 일본 국내에서 실시하는 일한교류사업에 서울의 공보문화원장이 참석해 강연까지 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자매도시체결이 아니었습니다. 구(舊) 난고손(南郷村)과 부여읍 간의 자매도시결연은 어언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간 청소년교류와 각 실업단체의 상호방문 등 실로 활발한 교류사업을 계속해오다가 이번에 20주년을 앞두고 초손(町村) 합병으로 탄생한 미사토초와 부여읍 사이에 자매도시결연을 갱신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일한 간에는 230여 곳이 자매도시결연을 맺고 있지만, 미사토초와 부여읍의 교류관계는 참으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그처럼 긴 세월에 걸친 두 자매도시 간 교류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역대 국제교류원도 초대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사토초의‘후루사토 다이시(ふるさと大使)’ 즉 ‘향토 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국제교류원이란 일본의 지방공공단체가 한국 청년을 현청(県庁)이나 지방 관청인 마치야쿠바(町役場)에 받아들여 한국과의 교류촉진을 위해 근무토록 하고, 월급은 일본정부가 보조하는 제도(JET Program)입니다. 미사토초는 지금까지 8명의 우수한 한국의 젊은이를 받아들였으며, 그 초대 국제교류원이 지금 공보문화원에서 <일본의 새소식> 편집을 맡고 있는 박진희 씨입니다.
  
그러나 뭐라 해도 그 때 미사토초의 초청을 받아들인 까닭은 역시 ‘시와스 마쓰리의 본향(師走祭りの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완전히 매료당한 나는, 어느새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한일축제한마당’에 ‘시와스 마쓰리’를 어떻게든 불러올 수 없을까를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일축제한마당’은 일본의 마쓰리와 한국의 축제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이를 통해 일한양국의 시민이 교류한다는 취지로 2005년 서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는 5회째라 하여 처음으로 도쿄(東京)에서도 열림으로써 일한 동시개최가 성사되었습니다. 일한관계의 전환기가 될 2010년은 서울을 주(主)무대로 성대히 개최할 방침이 확정되었고, 테마도 ‘유구한 역사에서 미래로’(가칭)가 될 전망입니다. 미사토초로부터 초청이 온 것은 바로 운영위원회에서 2010년 한일축제한마당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터라 운영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나는 미사토초의 기념강연에서 ‘시와스 마쓰리’가 ‘한일축제한마당’에 필히 참가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참가를 호소했다’는 것은, 사실 그 시점에서는 운영위원회의 예산 지원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딱히 전망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연 전에 말씀을 나눈 미사토초의 정장(町長)은 ‘한일축제한마당’의 의의를 금방 이해하시고는 미사토초가 일부 독자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시와스 마쓰리’는 꼭 참가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미야자키현까지 간 보람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게 순조로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시와스 마쓰리’는 이른바 사흘에 걸쳐 연출되는 3막의 장편 무대극입니다. 1막 중에만도 몇 가지 장면이 있고, 볼거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무대는 신사의 경내였다가 시골집 마당이었다가 냇가로 바뀌면서 히키 신사와 미카도 신사 사이를 오가는‘고신타이(御神体: 신령을 상징하는 물체)’와 주위에 모여든 마을사람들이 꾸미는 놀이마당입니다. 이를 서울광장에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시와스 마쓰리’ 첫날의 ‘무카에비(迎え火: 혼백을 맞이하기 위한 불)’가 비추는 웅대한 산줄기와 드넓은 전원 풍경도 애당초 없는데다, 서울광장에서는 불의 사용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구슬프고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도드라지게 할 산골의 고요함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 없이‘시와스 마쓰리’의 멋과 맛을 어떻게 서울시민들로 하여금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마쓰리와 지역성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만큼‘한일축제한마당’같은 행사에 있어서는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어려움은 특히 두드러진 듯 싶었습니다. 올 1월에 미사토초를 세 번째로 방문한 것은 곧‘시와스 마쓰리’를 보면서 이런 문제를 현지에서 생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새로 운영위원장에 취임한 시바타(柴田) 위원장 외에 축제한마당 관계자가 동행했습니다. 나로서는 2년만의‘시와스 마쓰리’였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도 어느새 그 대열에 어우러지는 분위기는 2년 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곳 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정말이지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서울광장만의‘시와스 마쓰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분들의 열의는 굉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시바타 위원장도 열렬한 ‘시와스 마쓰리’ 팬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후로도,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을 비롯하여‘시와스 마쓰리’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 한국 내에 꽤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9월부터 10월에 걸쳐 충청남도가 주최하는 ‘2010 세계대백제전’도‘한일축제한마당’을 전후해서‘시와스 마쓰리’를 부여에 초청할 의향이라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올해의‘한일축제한마당’은 10월 9일~10일에 열립니다. 미야자키현 현지의 분들과 한국내의 많은 ‘시와스 마쓰리’ 지지자들, 그리고 운영위원이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반드시 이‘시와스 마쓰리’의 멋과 맛을 서울시민의 가슴에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2008년 1월에 ‘시와스 마쓰리’를 처음 보고 온 뒤로 얼마 동안, 나는‘시와스 마쓰리’와 백제 역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소식> 칼럼도‘私はどうも「百済熱」にかかってしまったようです。(아무래도 난‘백제 열병’에 걸렸나 보다)’라는 대목을 따서‘百済熱(백제 열병)’이라 붙였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열병’이란 말은 별로라 하여‘백제사랑(百済熱愛)’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역시 열’이요,‘열병’이었습니다. 더욱이 주위의 공기가 차갑고 팽팽하게 얼어붙는 계절이 되면 또 다시 난고쿠를 찾고 싶은 병이 도지는, 전염성이 매우 높은 ‘열병’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런 ‘열병’에 걸려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런 분께서는 부디 올 10월의 서울광장을 고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까지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빕니다!
번역 : 김경희 번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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