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안내 >> 대사관 칼럼 >> 공사 외 칼럼
 
     
   
한국의 진미 ‘홍어’와 ‘번데기’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다카하시 다에코(髙橋妙子)

  새소식 독자들로부터 원장은 한국내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맛있는 음식을 많이 접하는 것 같은데 그 중 무엇이 제일 좋더냐는 질문을 듣는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조금 있으면 2년. 확실히 그간 한국 각지에서 여러 음식을 맛보았습니다.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제주도의 오겹살, 포항의 과메기, 춘천의 막국수, 여수의 갓김치 등. 함께 여행한 벗들이나 따뜻이 맞아주신 고장의 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맛깔스러운 추억’입니다. 서울에서 맛본 생갈비, 간장게장, 잡채, 순두부, 김치찌개, 수제비 등도 참 좋아합니다. 한편으로 결코 입맛에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색다른 ‘진미’도 만났습니다. 홍어와 번데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보통 한국인들 중에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홍어에 대해 나는 서울에 온 후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한 일본인이 “저는 실은 홍어를 좋아해서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 이건 틀림없이 색다른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한국인도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쪽일까? 과연 좋아하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나와 홍어의 첫 만남은 전혀 예기치 못한 형태로 찾아왔습니다. 홍어 이야기를 듣고 얼마 안 돼 일본에서 놀러 온 친구들을 한정식 집에 안내했을 때입니다. 언어문제도 있고 해서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적당히 코스 메뉴를 시켰는데 홍어가 포함돼 있었던 겁니다. 몇 가지 야채랑 고추장으로 무친 음식이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덥석 입에 넣은 나는 하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암모니아 냄새와 맛에 기겁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욱- 토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가게 사람들에게 물을 것도 없이 ‘이게 바로 홍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때까지 한국과 한국음식에 대해 사뭇 신이 나서 떠들던 나는 그만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는지라, 얼마 전 교분이 있는 박교수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곳이 홍어 전문점인 것을 알았을 때는 큰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고, 또 전문점이라 해도 홍어말고도 뭔가 먹을 게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첫 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당한 각오’를 하고 임하는 거니까 그런대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렇게 도착한 전문점은 가게 바깥에서부터 암모니아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거의 기도하는 심정으로 방에 들어가자 이미 몇 분이 와 있고, 식탁에는 풍성한 야채와 김치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 세상에! 번데기도요. 여태껏 수도 없이 한국식당에 갔지만, 전채(前菜)로 번데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실은 서울에 막 부임했을 때입니다. 명동 거리를 걷다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포장마차에서 묘한 냄새가 나기에 들여다봤더니 ‘번데기’라 불리는 누에고치의  애벌레였습니다. 한데 보고 있자니까, 지나가던 젊은 커플이 사더니 마치 팝콘이라도 되는 양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일본에서도 간장과 설탕에 졸여 쓰쿠다니(佃煮: 조림의 일종)로 만든 메뚜기를 먹긴 하지만, 쓰쿠다니는 밥 반찬으로 식탁 한 켠에 살며시 올리는 것. 그런데 번데기를 대낮에 당당히 젊은 여성까지도 먹고 있다니. 참말이지 놀란 나는 일본의 채식파 남자 앞에서는 그런 모습은 안 보이는 게 좋다, 만약 그 앞에서 먹으면 기절할지도 모르고 백년 묵은 사랑도 식어 버릴 거라고 부지중에 쓸데없는 충고를 하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동시에 나는 한국 근무 동안 번데기를 먹을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번데기를 보며 미얀마 근무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얀마에서 근무한 것은 1993년 12월부터 96년 7월까지 2년 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아직 첫 번째 자택 연금 상태이던 때였습니다. 대사관 경제부장으로서 일본과 미얀마의 경제관계 추진이 나의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후 오랜 기간 미얀마에 대한 최대의 원조 공여국이었지만, 군사정권 아래 민주화 지도자를 자택 연금시킨 상황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경제협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편 미얀마 정부는 국내의 민주화 외에 소수민족 문제도 안고 있었습니다. 미얀마는 태국, 라오스,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 많은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국경지대에는 다수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고, 일부는 미얀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긴 세월 전투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와족(Wa族)도 그 중 하나로서, 와족이 사는 중국 국경지대는 오랫동안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 재배지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미얀마 국군과 와군 사이에는 휴전협정이 성립됐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미얀마 정부와 협력하여 이 지역에 양귀비 이외의 환금성 작물 생산의 도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얀마군 지도부에 전달했고, 그러자 곧바로 일본대사관 주재 무관과 경제부장에게 미얀마군 간부의 중국 국경지대 시찰에 함께해달라는 초청이 왔습니다.
  이리하여 미얀마군 중장급을 단장으로 한 현지 시찰단에 참가하게 된 우리는  현장에 가자 곧 이 시찰이 휴전협정 성립 직후의 미얀마군과 와족 간의 신뢰조성 조치의 일환임을 깨달았습니다. 중화기 등으로 무장한 와군의 경비 속을 맨몸으로 들어가는 미얀마군 중장은 웃음을 띠면서 시종일관 우호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나도 이 지역을 방문하는 최초의 외교관 더욱이 여성으로서 대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저녁 식사 때가 되자 나온 것이 나방의 애벌레였습니다. 나는 그야말로 까무러칠 지경이었지만, 이를 먹지 않고 지나갈 방법이 없음은 자명했습니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그들이 권하는 대로 세 마리까지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엔마약통제프로그램(UNDCP)과 일본 정부에 의한 대체작물추진사업이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반년 후쯤이었을 겁니다. 당시 나는 미얀마가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민주화를 추진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작금의 미얀마 정세는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다시 번데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명동에서 번데기를 봤을 때 나는 이 미얀마의 경험이 떠올랐으나, 즉각 ‘여긴 한국이고, 내 담당은 공보문화니까, 이걸 먹지 않아도 일할 수 있을 터. 틀림없이 그냥 한국을 뒤로 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박교수가 정한 홍어 전문점에서는 아무도 내게 번데기를 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권하지 않으면 되레 마음이 쓰이는 법. 가만 보니 명동과는 달리 김이 나질 않습니다. 따라서 냄새도 안 나고요. 좀더 찬찬히 보니 미얀마의 나방 애벌레보다는 훨씬 먹기 쉬울 것 같더군요. 그러자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경험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꿀떡. 하나 입에 넣어 보니 그리 이상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 꿀~떡. 솔직히 결코 맛있단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허나 홍어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맥주 안주로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습니다.
  드디어 홍어가 나왔습니다. 과연 전문점이라 다르더군요. 홍어 토막이 큼직큼직했습니다. 이것을 삼겹살 수육과 함께 묵은지에 싸서 두 눈 질끈 감고 입에 넣자, 맨 처음에는 입안 가득히 김치 맛이 퍼졌습니다. 다시 두 번 세 번 씹어보니, 홍어는 뼈가 연해서 제법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있었습니다. 혀를 톡 쏘는 맛을 가까스로 견디며 계속 씹다보면, 이윽고 암모니아 냄새가 입안은 물론 콧속 깊숙이까지 차 오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참기 힘든 순간에 막걸리를 꿀꺽. 이렇게 먹는 법을 배워가며 그럭저럭 세 점 정도까지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 날 저녁모임이 있기 며칠 전에 경상북도로 여행을 갔던 박교수가 우연히 그곳 식당에서 맛이 기막힌 막걸리를 만나 우리를 위해 가지고 왔답니다. 그리고 역시 막걸리에는 홍합이 제격이다 싶어 이 전문점을 택했다나요. 확실히 박교수가 가져온 막걸리는 깔끔하면서도 달콤한 게 아주 맛있었습니다. 또 홍어의 자극적인 맛도 몇 번 먹다 보면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막걸리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라면 홍어보다 파전이 나을 것 같군요?! 아무튼 오묘한 한식(韓食)의 세계를 들여다본 저녁이었습니다.


번역 : 김경희 번역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