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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을 가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다카하시 다에코( 髙橋妙子)


10월, 경상북도 울진군을 여행했습니다. 지난 5월 전라남도에 갔을 적의 길동무들과 함께였습니다. 그들 중 한 친구(한국인)가 10년 이상 근무한 서울시내의 유명 호텔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기에 송별회를 겸한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테마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추억 여행’의 요소로 무엇을 꼽으시는지요. 날씨, 즐거운 길동무, 아름다운 풍광의 명승지, 고장의 별미, 그리고 쾌적한 잠자리?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다 온천까지 곁들인다면 최고겠지요. 그런데, 정말이지 이번 여행은 이런 요소들을 죄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올해 서울의 가을 하늘은 청명한 날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우리가 주말에 찾은 울진도 이틀 다 쾌청하고 멋진 날씨였습니다. 포항까지는 비행기로 눈 깜짝할 사이. 거기서부터 소형 버스로 해안선을 따라 북상했는데 왼쪽에는 단풍 옷으로 갈아입기 직전의 짙푸른 산줄기가, 오른쪽에는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놓인 들녘에는 수확을 앞둔 벼이삭이 황금빛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따스한 풍경 속을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하도 좋아 몇 차례나 깜빡깜빡했던지, “괜찮나, 어디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냐?”고 한국인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중평이란 마을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입니다. 한 친구가 이 언저리는 서울사람들의 말을 빌면 거의 “잊혀진 땅”이라고 했습니다. 경상북도에서도 특히 북부는, 직선거리로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나 직행 교통망이 없어 우리처럼 포항까지 갔다가 올라와야 하므로, 예를 들면 전라남도보다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겁니다. 그러자 또 한 친구가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에 이 주변은 해안을 통해 북한 공작원들이 침투하는 바람에 해안선을 따라 철조망이 죽 둘러쳐져 있었다고요. 그런저런 사정 때문에 서울로 가는 도로를 정비하지 않은 채 지낸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몇 킬로미터에 걸쳐 철사 줄에 꿴 오징어가 바람에 나부끼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울진의 마른 오징어는 서울에서도 특히나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오랜 동안 ‘잊혀진 땅’이었는지 몰라도 지금 울진군은 관광진흥에 적극 힘을 쏟고 있는 듯 유적·명소도 말끔히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성류굴로 불리는 전장 800m의 종유굴을 포함해서 불영사, 보경사 등 유명한 절도 가까이에 많았습니다.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불영계곡에 자리 잡은 불영사.
왕피천의 지류인 광천의 물길이 빚어낸 불영계곡은 총길이가 15km나 된다고 하는데, 계곡물 소리와 드문드문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이 가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 계곡을 따라 발길을 옮기자, 이윽고 신라시대에 창건된 불영사가 고즈넉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지난번 전라남도 여행 때 발견했던 ‘경치가 빼어난 산속에 유명한 절이 있다’는 법칙을 다시 확인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왜 불영사(佛影寺)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대웅보전 등을 참배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큼직한 연못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저녁나절이 다 된 시간이라 계곡의 산등성이를 타고 넘은 햇살이 연못에 비쳐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산등성이의 하늘에 우뚝 선 부처님의 모습이 물 위에 또렷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 한 걸까요? 아무튼 요즘은 단풍 구경을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겠지요. 그보다 겨울철의 설경(雪景)도 절경이라 하니 그 때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명소 순례 후에는 역시 그 고장의 별미 음식이 제격. 울진은 일찍이 ‘잊혀진 땅’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만큼 청정 자연환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계절 채소나 해산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길에 알았습니다. ‘2009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도 준비 중이라는군요. 이런 가운데 우리의 목표는 울진 송이버섯과 대게.
서울에서 듣기로는 올 가을에 비가 적은 탓인지 한국산 송이버섯이 흉작이라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손을 썼는지 그런 송이버섯을 1kg이나 구해왔습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한우와 함께 석쇠에 구워 먹는 맛이라니. 독자 여러분께는 말씀드리기가 정말 죄송할 정도의 호사스런 식탁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2개의 송이버섯을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 일본식의 맑은 국으로 끓여서 온 식구가 나눠 먹건만, 이번에는 손으로 찢어 석쇠 불에 슬쩍 구워 먹는 와일드한 방식이었습니다. 구운 송이와 적당히 기름기가 도는 한우의 그 기막힌 조합! 서울 경동시장의 송이버섯 아줌마도 말했듯이, 한국산 송이는 북한산보다 값은 조금 세지만 향이나 맛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에 온 지 1년여, 요즘 나는 불고기나 삼겹살을 먹을 때면 반드시 구운 마늘을 곁들여 먹습니다. 그 쪽이 단연코 고기 맛이 좋으니까요. 하지만 송이버섯과 마늘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늘 냄새가 송이 향을 죽이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으나, 그건 송이의 양이 아주 적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1kg이나 되자 전혀 ‘괜찮아!’였습니다. 나는 보통의 일본인들이 평생 먹을 양의 송이버섯을 한 자리에서 먹어치운 기분입니다.
대게는 둘째 날 점심에 먹었습니다. 일부러 강구항까지 찾아가 살아 있는 대게를 쪄 달래서요. 꽉 찬 하얀 속살이 촉촉한 게 정말 부드럽고 달았습니다. 게딱지 속의 게장을 이용한 볶음밥의 감칠맛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당 2만원 꼴이니 얼마나 싼지요!

끝으로 우리 숙소는 백암온천관광단지에 있는 모 제철회사의 사원복지시설이었습니다. 주말이라 사원 가족들로 꽉 찼음에도 여유로움이 있는 훌륭한 시설로 무척 편안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온천탕이 크고 쾌적했습니다. 온천수는 철, 나트륨, 마그네슘, 염소, 플루오르 등을 비교적 풍부히 함유하고 있어 피부병, 신경통, 위장병, 류머티즘, 피로회복, 부인산후병, 금속중독증, 동맥경화, 당뇨병, 간질환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질환에 듣는다는 말인데, 정말로 병이 나으려면 장기간 머물며 치유에 전념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명대로 라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인지, 적어도 피부가 매끈거리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곳 외에도 백암온천에는 많은 숙박 시설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근처에 가실 일이 있거든 직접 체험해보심이 어떨는지요.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한국인에 대해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게를 먹을 때입니다. 일본의 ‘잔치 메뉴에는 게 요리를 넣지 마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데, 왜 그럴까요. 게가 나오면 다들 먹느라 정신이 팔려 대화가 겉돌기 때문입니다. 한데 우리 친구들은 게를 먹으면서도 결코 대화가 끊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끊기기는커녕 점점 더 이야기가 무르익는 사람들입니다. 아무튼 한국인의 활력에는 그저 머리가 수그러들 따름입니다! 참 뜻 깊은 ‘추억 여행’이었습니다.

[번역: 김경희 번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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