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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월, 전라남도를 다녀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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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다카하시 다에코(髙橋妙子)

한국에서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지요. 하긴 일본에서도 5월을 바람이 향기로운‘훈풍의 5월'이라 하여 가장 싱그러운 때로 여 기는데, 이번에 처음 경험한 한국의 5월은 확실히 특별한 느낌이었습니 다. 4월의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난 후 일제히 신록이 짙어지고 햇 살도 훨씬 자신감이 넘쳐 무척 개방적인 기분이 들게 합니다.
그 5월의 햇살에 이끌리듯 전라남도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여수에서 남 해를 거쳐 순천 방면을 돌아왔습니다. 왜 이번에 그곳을 택했는지는 뚜렷 치 않습니다. 누군가가 여수 쪽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아직 가본 적이 없는나를 포함한 몇몇이 함께가고 싶어 하여 성사된것입니다. 그래 도지금돌이켜보면발견한게많은참즐거운여정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수는 분로쿠.게이쵸노에키 곧 임진란 때 좌수영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주변 해역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활약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차 를 달려도 바다는 그저 잠잠할 뿐이라 이곳 일대에서 그토록 격렬한 전투 가 벌어졌으리라고는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2012년의 해 양박람회를 위한 기반시설 정비가 이미 시작되어 박람회에 대한 기대가 참 큽니다.
순천에서는‘순천만'으로 불리는 천연 간석지를 찾았습니다. 동천이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일대는 갈대숲을 이뤄 다양한 생물들의 보고인 동시에, 겨울에는 수많은 철새의 도래지이기도 합니다. 해질 녘 동천 하구를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첩첩이 이어진 산 너머의 하늘이 물들기 시 작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는 탄성이 새어 나왔습니다. 2005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환경박람회 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하니, 2012년의 해양박람회에서도 필시 주력 사업의 하나가 되겠지요.
한편 개인적으로 가장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여수, 남해, 순천에 걸쳐 유 명한 사찰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본의 절은 도심에 있는데 한국의 절은 산중에 있다. 그것은 일찍이 조선시대의 척불정책으로 한 국의 절이 지방의 산속으로 쫓겨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 습니다. 하지만 그뿐일까요. 동행한 대학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의 태조가 아직 젊었을 때 이 지방의 고승으로부터 장차 임금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으며,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의 불교 사찰은 보호를 받 았다고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경관은 불문에 들어선 자가 수행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향일암, 송광사, 선암사의 세 곳을 찾았는데, 모두 마을과 동떨 어진 깊은 산중에 있었습니다. 사전에 운동화를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듣 긴 했지만, 현장에 가보니 참배를 하려면 나름대로 각오랄까, 적어도 걸 을 태세만은 갖춰야 함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향일암은 돌산도의 가파른 산자락을 깎아 만든 계단을 한없이 올 라가야 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날은 하필 가랑비까지 오락가 락해서 발밑이 미끄러워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당도한 산정에는 밀교 사원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 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경내에서 멋진 바다 경치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 었을 터입니다. 그래도 비 때문에 우윳빛 안개에 싸인 사원은 도리어 신 비한 느낌마저 감돌았습니다. 불상 앞에 오체투지로 3배를 올 리고 합장을 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어렵사리 여기까지 왔으니 틀림 없이 좋은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우리 집에 는 신단과 불단이 있는데, 그런 뜻에서 나는 신도와 불교의 전통문 화 속에서 자란 셈입니다. 평소엔 결코 신앙심이 뜨겁다고 할 수 없으나, 이번처럼 절을 참배하면 자연스레 합장을 하는 습관은 배어 있습니다. 그 점에선 지극히 평균적인 일본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모두 조계산 기슭에 있습니다. 두 절은 각기 조계 종 승보사찰(주1)과 태고종 태고총림(주2)으로서, 특히 송광사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하여 많은 수행승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들고 있다고 합니다. 딴은 대웅전을 비롯한 수십 채의 훌륭한 건물이 위 풍당당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이 더 끌린 것은 선암사 쪽이었 습니다. 단청 색깔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바래서 송광사보다 훨씬 더 소 박한 느낌이었습니다. 선암사의 경내 곳곳에 기부를 호소하는 팻말이 붙 어 있어 새전을 내면서 엉겁결에 호기를 부렸습니다. ‘와비' ‘사비'(주3)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일본인의 어쩔 수 없는 구석인가 봅니다.
내가 선암사에 흥미를 가진 또 하나의 이유는,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이 지역에서 차 재배가 이루어져 차를 마시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척불정책은 깊은 산속으로 절을 몰아넣 었을 뿐 아니라 그 때까지 성행했던 차 마시는 문화도 쇠퇴케 했다고 합 니다. 그럼에도 순천이나 이웃인 보성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내내 야생차 를 이용한 엽차가 전승되어 왔답니다. 그리고 일본식민지시대에 차를 본 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선암사가 자리한 산에도 야생차가 많이 자라고 있고 절 뒷산의 차밭에서도 차를 재배하고 있어 우리도 승방에서 차 대접을 받았습니다.
여행에 나서기 며칠 전, 우연히 인사동을 걷다가 중국차 전문점에 들 렀을 때입니다. 20년 이상 고급 중국차를 취급해왔다는 그 가게는 진열 된 차들이 모두 엄청난 고가의 것뿐이었습니다. 장난조로 점원한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다 보니, 그 가게에서 유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한국차가 있다고 했습니다. 주인 말에 의하면, 한국 최고 품질의 차로‘순천산'이 라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순천'이란 지명을 귀에 접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참고로 가격을 물었더니 60g에 20만원이란 대답 이 돌아왔습니다. 하도 비싸서 살 마음은 없었지만, 이번에 순천에서 선 암사 참배길을 걸으며‘그 고급차는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태어난 것 인가'싶어 무척 감회가 깊었습니다.
또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역시 먹거리입니다. 전라도 음식은 맛있 다더니 역시 소문대로여서 가는 곳마다 참말이지 다들 잘 먹었습니다. 특 히 여수의 돌산갓김치가 입에 딱 맞았습니다. 이를 눈여겨봤는지 여수공 항에서 한국인 벗이 갓김치를 선물로 사주더군요. 덕택에 서울에 돌아온 뒤로도 얼마 동안 나는 흰 쌀밥에 돌산갓김치로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주1) 불교의‘삼보'는 불.법.승. 조계종의 삼보사찰은 진신사리를 모신‘불보사찰'통도 사, 팔만대장경이 있는‘법보사찰'해인사, ‘승보사찰'송광사이다.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송광 사는 지금도 한국불교의 산실로서 면면히 승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또 고려시대에 불교를 바로 잡고 새로운 전통을 세웠기 때문이라 한다.
(주2) 총림은‘선수행 전문도량', ‘경전교육기관', ‘계율 전문교육기관'의 3대 조 건을 갖춰야 하며, 한국에는 조계종 5대 총림, 태고종 1대 총림 등 모두 6대 총림이 있다고 한다.
(주3) ‘와비'는 그윽한 정취, ‘사비'는 예스러운 운치의 의미로 둘 다 일본문화의 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 설명
1. 아련히 물든 하늘이 해질녘이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2. 어쩐지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
3. 향일암에 당도했을 땐 숨이 차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합장만 하고 있었다.
4. 선암사 참배길의 아치형 돌다리
5. 송광사 주위의 해자
6,7. 이번 여행길 최대의 발견은 다들‘먹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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