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 한일교류관계 >> 지금까지의 교류실적 >> 한일 우정의 해 2005
 
   
   
정랭문열(政冷文熱)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후지야마 요시노리(藤山美典)

정랭문열(政冷文熱). 2005년의 한일관계를 평가하며 작년말 모 주요지의 기사에서 사용한 말이다. 일본과 한국의 정치관계는 반드시 원활했다고 하기 어렵지만, 문화교류와 시민교류는 이제까지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다’. 한일의 우정을 키우기 위해 역풍 속에서도 1년간 힘껏 노력해온 모든 분, 한국인과 일본인, 민관의 구별 없이 우정의 해와 관련된 모든 분들께‘수고했다’며 다정하게 노고를 위로해주는 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오프닝, 톱 스타에게 보내는 열렬한 환호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뻔했던 팝 콘서트, 역사문제로 대일 비판의 회오리가 이는 가운데 진행된 가부키(歌舞伎) 공연, 노래는 한국인을 당할 수 없다며 두손든 한일가라오케대회와 NHK 노래자랑, 다카노(高野) 전대사와 함께 분장실까지 밀고 들어갔던 최지우 씨 콘서트, 5만명이 대학로에 운집했던‘한일 축제 한마당’, 그야말로 소녀들의 세계의 정수인‘다카라즈카(寶塚)’, 최고의 스타가 자리를 함께 했던 한없이 호화로운 우정의 해 기념 콘서트‘프렌즈’, 한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분위기를 북돋았던 우정의 해 기념 리셉션과 ‘미래로의 선언’.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이다. 이 칼럼을 통해 그때 그때 이벤트도 많이 다루었지만, 이번호에서는 특히 내게 추억으로 남아 있는 몇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9월에 있었던‘한일 축제 한마당’. 당일 아침은 쾌청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만세를 외쳤다. 이 행사는 날씨만 좋으면 대성공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더구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나들이 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1부 스테이지에는 구경꾼들이 새까맣게 모였다. 저녁으로 예정된 제2부 퍼레이드도 시작 전부터 길가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바로 그 순간, 수상한 먹구름이 갑자기 나타나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비구름이다. 숨이 멎을 듯한 쇼크였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다음 날로 연기라도 할 수 있으련만, 행사 도중이었다. 더구나 클라이맥스에 접어들고 있는 순간이라 여기서 중지되면 새로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최악의 타이밍에 무정한 비가 쏟아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과는 전혀 달리 나는 마음 속으로 어쩌면 이렇게 운 나쁘게 태어났을까, 아침 나절 쾌청한 날씨로 나를 기쁘게 하더니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다니 참 심술궂은 하느님이라고 신을 원망했다. 비는 내렸다. 서울시 남부에. 기적적으로 대학로가 위치한 종로구만을 비켜서. 하느님, 역시 감사합니다.

일한?한일친선여성협회 합동총회에 대해서는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실은 그 다음날 점심에 대사 관저에서 주요 인사를 초대한 오찬회가 있었다. 합동총회에서는 한국측 요인의 스피치가 있었는데,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하여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을 엄중히 추궁하는 내용인지라 회장 전체에 상당히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래서 이튿날의 오찬회는 정치 이야기를 빼고 되도록이면 온화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기를 나는 사뭇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랴, 그 날이 바로 10월 17일. 아침 출근 전에 NHK를 보니 긴급 뉴스로 ‘오늘 오전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 않는가. 입을 벌린 채 가늘게 떨면서 텔레비전을 응시하는 나의 심상찮은 기색을 느꼈는지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찬회는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상대편도 참배 건을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대사 관저의 연회석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모르는 듯 참으로 편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오시마 대사가 인사말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언급하며 싸늘한 분위기를 풀어갔다.

‘강 건너 저편에, 5월’이라는 연극이 있다. 서울을 무대로 한국어 선생님 가족과, 이 선생님한테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그룹이 한강 둔치의 공원에서 함께 꽃놀이를 한다는 설정이다. 두 가지 갈등으로 무대는 처음부터 긴장된다. 첫째는, 한국인 어머니가 또 다른 아들 부부의 캐나다 이주계획에 격노한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경험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에게 있어 외국 이주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두번째는,‘역시 한국인은 대충대충이다’라든가‘정말로 일본인은 교활하다’라는 등의 편견에 기인한 일본인 그룹과 한국인 그룹의 감정적인 대립이다.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일본의 초등학교를 다닌 어머니뿐이다. 독립을 빼앗은 일본과 일본어는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친숙한 일본 동요나 일본 과자는 매우 좋아하는 어머니. 완벽한 일본어와 멋진 목소리로‘바닷가의 노래(浜邊の歌)’를 부른 뒤,‘나는 일본어 수업이 싫었어’라고 중얼거리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둘째 며느리가 힐난한다. “그렇게 일본이 싫은데 일본 과자는 왜 먹고, 일본어는 왜 쓰느냐”고. 어머니의 마음속에 잠재한 일본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격렬한 갈등을 정년을 앞두고 한국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온 일본인 여성이 열심히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의 진의를 느끼면서 조금씩 어머니의 마음을 덮고 있던 얼음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 앞의 일본인들이 일본을 떠나 예사로이 한국인에 둘러싸여 살면서 예사로이 한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가운데, 어머니는 캐나다 이주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간다. 이윽고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과 일본인은 자연스럽게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골을 들이대는 동시에 서로 끌어당기는 강한 힘을 느끼게 한, 틀림없이 우정의 해를 대표하는 예술작품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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