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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 한일교류관계 >> 지금까지의 교류실적 >> 한일 우정의 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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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우정의 해 2005’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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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2등서기관 |
나카에 아라타 (中江新) |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여 거행된 대규모 문화교류사업‘한일우정의 해 2005’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우정의 해 기획단계부터 추진을 담당해온 사람으로서 솔직히 감개무량하다.
사실 교류의 현장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땀 흘리며 눈물겨운 노력을 하신 여러분의 노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한일관계는 순풍에 돛단배 같지만은 않았다.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교류를 실천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700건이 넘는 실로 다양한 교류사업이 전개되어 한국과 일본에서 그리고 제3국에서 꽃을 피웠다. 지난해 개최된 모든 우정의 해 기념사업을 다룬다는 것은 지면 관계상 어렵겠지만, 우정의 해 1년간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간단하게 되돌아보고자 한다.
작년 1월 28일 서울시내의 올림픽홀에서 개최된 ‘한일우정의 해 슈퍼 라이브 in 서울’(일본측에서 CHEMISTRY, DA PUMP, kiroro, 한국측에서 박효신, 박정현(리나박), 동방신기 출연)과 12월 6일 서울종합운동장 잠실체육관에서 개최된‘한일우정의 해 기념콘서트’(일본측에서 히라하라 아야카, 나카시마 미카, V6, 한국측에서 보아, 김종국, 김범수, 비, 세븐, 동방신기, 휘성 출연) 두 행사는 팝 문화를 통한 양국 젊은이들의 교류가 어떻게 국경을 뛰어넘었는지를 보여주는 행사였다. 두 콘서트 모두 양국을 대표하는 인기 아티스트가 출연했고, 또한 양국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관객으로 몰려들었다.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 가수의 이름과 노래를 잘 알고 있어서, 노래가 시작되자 따라 부르는 등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류 스타들을 눈 앞에 한 일본의 젊은이들도 그 강력한 파워에 놀라는 한편, 새로운 매력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어느 콘서트나 마지막에는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정의 해 테마송인‘Dance With me’를 불렀는데, 이렇게 국경을 초월한 공통의 감동이 생긴 것은 우정의 해의 최대 성과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규모 공연이 다수 실현된 것도 우정의 해의 특징이다. 4월에 1500석의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쇼치쿠 다이가부키 치카마쓰자(松竹大歌舞伎近松座) 공연이 실현된 것은 바로 양국의 정치관계가 긴장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나 자신도 서울 및 부산공연이 실현될지 무척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문화의 힘이 정치를 앞선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서울공연에는 인간국보 나카무라 간지로(中村某治郎) 선생(현재는 사카타 도주로(坂田藤十郎) 선생)의 연기를 한번 보려는 사람들이 첫날 900명, 둘째와 셋째날 1300명씩 입장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남자 배우가 여자 이상의 여성스러움을 선보이는‘온나가타(女形)’의 연기법에도 많은 지식인과 언론 관계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또한 ‘정치문제가 있더라도 문화교류를 멈추게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는 젊은 서울시민의 소리에도 용기를 얻었다.
11월에는 가부키와는 반대로 여자 배우들로 구성되어 남자 이상으로 남성다움을 보여주는‘다카라즈카 가극(寶塚歌劇) 한국공연’이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되었다. 다카라즈카 가극 공연은 레뷰로 대표되는 화려한 무대는 물론이고, 무대 전환과 조명 조작의 어려움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각종 공연조건의 확보, 극장 확인 등 사전준비 단계에서도 다카라즈카 가극단 관계자와 협력하는 형태로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공연 자체는 높은 평판에 걸맞게 3일간에 연일 3,000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왔으며, 한국에서는 만화책으로 유명한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화려한 레뷰 ‘소울 오브 시바’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다카라즈카 가극 한국공연은 언젠가 한국의 안방에도 소개되겠지만, 많은 한국분들이 그 화려한 무대에 계속 매료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일본의 축제에서 사용되는‘왓쇼이’라는 말은, 원래 한국어의‘왔소’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있다. 그 여부는 어떻든 간에 일본과 한국의 36개 단체, 2000여명이 실로 대학로에 온 5만명의‘왔소’ 관객과 함께 ‘왓쇼이’를 외친 것이 9월의‘한일교류축제/한일 축제 한마당’이었다. 사실 그날 서울 남산의 남쪽에서는 소나기가 내려 매우 걱정했지만, 북쪽에 위치한 대학로는 날씨도 쾌청해서 저녁 나절 남쪽에서 약간의 비구름이 다가왔을뿐 실제로 비가 쏟아지지는 않아 시종일관 축제 공연과 퍼레이드로 북적였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 아닌가 하고 감동했다.
대학로의 한쪽 차선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당일 오후부터 부채춤과 고진 가구라(荒神神樂)를 비롯한 양국의 축제 경연이 펼쳐졌고, 또 사회를 맡은 인기 아나운서 박나림 씨와 호서대학교 가나이 노부요시(金居修省) 선생님이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절정은 어둠이 내리는 대학로의 큰길에서 거행된 퍼레이드였다. SJC(서울일본인회) 회원들에 의한 요사코이 아리랑 등 요사코이 춤의 면면과 날렵하고 힘찬 몸놀림을 보인 한국 태권도 그룹의 격파시범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아키타(秋田)의 간토(竿燈) 마쓰리와 능인선원의 석가상, 아오모리(靑森)의 네부타(ねぶた) 마쓰리가 이어졌다. 특히 네부타 마쓰리에는 양국의 많은 시민들이 네부타 앞에서 춤을 추며 행진하는‘하네토’로 뛰놀았고, 많은 서울 시민이 즉석에서 행렬에 뛰어들어 참가하기도 했다. 축제는, 예를 들면 NHK와 KBS가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개최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던 ‘노래자랑’ 등과 함께 누구든지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몰두할 수 있는 양국이 공통으로 선호하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고, 함께 즐기는 아이템의 발굴도 문화교류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우정의 해 동안 700건 이상의 교류사업이 전개되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이 밖에도 정말 폭넓은 양국의 시민 및 지방 간의 교류행사가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는 일본 지방교향악단의 내한공연, 노래자랑, 물산전, 홈스테이, 청소년?스포츠 교류 등 다양한 종류의 교류가 있었다. 양국의 전통적인 야외 놀이를 서로 배워, 디지털 문화에 매몰되어 실내에만 틀어박히는 어린이가 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문화적인 영감을 키워가자는 귀중한 행사도 있었다. 또 여러 사정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교류를 중지?연기한 단체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재개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한일의 교류 건수와 폭이 그 정도로 많고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
끝으로 양국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또한 교류를 실천하고 계신 수많은 분들이 우정의 해를 떠받쳐오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여러분의 존재야말로 ‘나가자 미래로, 다같이 세계로’라는 우정의 해의 취지를 앞으로도 살려, 더 나은 양국 관계를 만들어 가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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